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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광 개인전 <안녕 달씨>

오뉴월 이주헌은 김민광의 카툰 에세이 발간을 기념하여 김민광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전시되는 작품들은 <안녕 달씨> 에 수록된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으로 장년이 되어가기까지의 삶을 담은 이미지를 통해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공유한다.

책소개
엉뚱하고, 달달하고, 무서운 카툰 에세이
누구나 한 번쯤 질문하는 ‘나는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가는 가? 에 대한 철학적 고민과 물과 불, 선과 악, 빛과 어둠에 대한 가치들이 갖는 모순을 시각디자이너의 상상을 더해 쓰고 그린 자전적 에세이다.
안녕달씨는 주인공 달씨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곳에서 태어나 집도 없고, 나침반도 없는 세상에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달씨의 가방은 처음에 유치원 가방처럼 노란색이었다가, 군대를 다녀와서는 파란색으로 그리고 중년이 되어선 주황색으로 바뀐다. 49살 가장의 무게도 글 곳곳에 묻어있다. 인생의 링위에 오른 달씨의 라운드는 49이거나, 자신의 현재 상황을 야구 경기로 4회말 투아웃 마운드에 놓인 투수라고도 비유한다. 승리투수가 되기 위해선 5회말까지 등판해야 한다. 마지막은 인생의 여정을 마친 달씨가 다시 환생을 위해서 태어난 시점으로 돌아가기 위해 걸어왔던 길을 역으로 오르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리고 다시 반복되는…

서평 1
살아냈거나 견뎠거나… 마흔아홉에 돌아보는 삶.
김민광은 시각디자이너다. 20여 년 전에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니 정체성에 변화는 없다. 다소 엉뚱한 면이 있다는 것도 바뀐 게 없다. 여기서 엉뚱하다는 말의 의미는 일상적인 상상의 틀을 여지없이 깨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그것은 그저 엉뚱함에 그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책을 펴낸 것은 후자 쪽에 속한다.
카툰 에세이 『안녕달씨』는 그 ‘엉뚱함’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태어나서 49년 동안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일러스트를 직접 그렸는데, 이야기에 그림을 입힌 건지 그림에 이야기를 곁들인 건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일체감이 단단하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달팽이 캐릭터를 처음 스케치한 게 1995년이라니, ‘달씨’는 25년 동안 김민광의 마음속에 살다가 세상에 나온 셈인가?‘달씨’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안녕달씨』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모든 인생이 그렇듯이, 어디서 왔는지는 알 수 없다. 길거나 짧은 46편의 연작은 개인의 기억과 경험에서 도출한 다양한 주제를 ‘양면성’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풀어 놓는다. 선과 악, 빛과 어둠, 물과 불, 이런 모순적인 가치들이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철학적 고민이 코믹한 은유(隱喩) 속에 녹아 있다. 집도 나침반도 없는 세상에 던져진 달씨의 행보는 사각의 링 위에 오른 49살 가장(家長)의 고독함과 같은 것이다. 처음엔 유치원 가방처럼 노란색이었다가 군대를 다녀와서는 파란색, 중년이 되어서는 주황색으로 바뀌는 달씨의 가방은 대한민국 사회를 통과해 가는 보통 사내들의 행로를 잘 보여준다. 그 고단한 이야기는 저세상으로 진입하면 끝날 거라고 상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언젠가는, ‘억겁의 세월’ 후에라도, 다시 반복되리라는 암시가 선명하다. 엉뚱하고, 달달하고, 무서운 책을 읽고 나면 ‘한세상 살아간다는 게 결국 이런 것인가?’ 하는 질문이 진한 여운처럼 남는다.
류정환(시인, 도서출판 고두미 대표)

서평 2
안녕달씨의 그림책은 당당히 껍데기에서 나와 속살을 드러내는 민달팽이의 입장에서 등가죽이 따갑도록 시린 현실을 그림과 글로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지나간 삶의 노력에 대한 보상심리와 현실의 목마름을 자신의 아바타 달씨의 독백을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그림이 메꾸는 여백으로 군더더기 없는 글이 위로를 받고, 짧은 글의 직설적 의미를 그림으로 완곡하게 표현한 달씨의 이야기는 어쩌면 어른들의 처량한 동화처럼 보인다. 또 언어의 양면성이라는 유희를 빌어 고된 삶의 이면에는 아마도 행복이 존재 할 수 있다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독자의 가슴에 설정하기를 바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작가 달씨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말하지 못한 자신의 일상고독을 처음으로 용기 내어 말하면서 스스로에게 칭찬과 위로를 하고 있다.
이종현(커뮤니티스페이스 653예술상회 대표)

리뷰
민달팽이를 꿈꾸는 달씨

처음으로 손목에 찬 시계가 어색하여 느려졌다고 느낀 것은 시계가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생각의 흐름이 늦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심장 안에 있던 피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허파 안의 압력은 손목의 시계태엽이 팽팽히 긴장을 하여 오히려 지나치게 충분해서 무리가 간다면 세상 어느 곳엔들 의무로 가야 하는 곳에서는 이내 터질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한다. 김민광의 안녕달씨 “입학졸업”, “입대제대” 이야기이다. 아주 짧은 에세이라고 하는데 필자는 두 개의 작품에서 느끼지는 것은 미술에서의 미니멀아트의 시처럼 보인다.

그의 카툰을 보면 학교나 군대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규정과 규칙은 규율이 되어 질서를 경험하게 된다. 필자는 작가가 이미 미셀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통해 인지하고는 마치 아닌 듯이 34와 38사이에 슬그머니 36쪽을 삽입 편집한 것으로 보인다. 감시와 처벌은 교도소의 관리를 위한 판옵티콘의 양식에서 출발을 한다. 건축적 배치로 쉽게 통제를 할 수 있는 구조이지만 범죄자는 물론 이를 감시하는 중앙에 감금된 관리책임자 역시 이 장치와 연결된 부분적 존재로 본다. 이들은 나머지 분리된 존재들(죄수)의 반발이 발생할 경우 첫 번째 희생자가 될 것이다. 푸코는 ‘나의 운명은 내가 고안할 수 있었던 모든 속박에 의해서 결국 그들의 운명과 함께 묶여 있다’라고 하면서 교도소, 군대, 학교 병원도 이안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고 했다.
작가는 두 가지 상황에서 모두를 경험한 한국사회 남자로서의 부당한 경험들을 몇 자 되지 않는 에세이로 풀어내고 있다. 굳이 구차한 설명으로 라떼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카툰에서의 두 달씨가 너무 작고 왜소하게 보인다.

김민광의 에세이 “오늘 내일”을 읽으면 허구의 대화들이 반복되어 오고 간다. 에세이에서는 오늘과 내일 둘의 대화 이지만 공간과 시간을 동시에 결합하여 보면 등장을 하는 내일 들이 참 많다. 어제는 이미 가버린 시공간이기에 추억의 한 저장소이지만 오늘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일은 참 복잡한 시선으로 마주하게 된다. 어제와 오늘은 과거와 현재이고 죽은 자와 산자,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로도 보인다. 결코 대면이 불가능한 두 관계를 엮어서 어쩌겠다는 것인지 필자 나름대로 리뷰 해 보면 어제는 오늘을 대면할 수 없고 오늘 현재에서는 내일을 결코 만날 수 없다.

김민광이 이야기 하는 등식은 이렇다. 우리들 같은 오늘을 사는 산자들은 어제 죽은 자를 오늘 살고 있는 자의 삶속에 들여놓아 그들로부터 보호를 받고 내일을 안주를 하려고 한다. 결국 편안한 안주의 내일은 없었다고 했다. 없었다는 것은 있었대도 가능 했다는 미래분석의 것으로 해석이 된다. 카툰을 잠시 보면 달씨 하나가 휭하니 나가 버렸다. 아마도 어제의 달씨인 것으로 보이는데 테이블 위의 물건들의 배치로 보면 없는 하나의 달씨는 내일 인 것처럼도 보인다.

오늘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내일의 불안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을 에세이에서가 아닌 카툰에서 보여 준다. 내일은 來日인데, 올제나 하제(轄載)라고 하는 내일은 다가올 시간이라는 르완다어 Hazaza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말의 시제인 그끄저께, 그저께, 어제, 오늘, 모레, 글피, 그글피 안에 내일이 없으니 우리에겐 내일이 없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작가가 이야기하는 내일은 없다는 것으로 해석을 해도 무방한지 필자는 조심스럽다. 마치 내일부터 실업자가 되는 것 같은 느낌도 지울 수가 없으니 말이다. 아제 말고 그냥 안식일이나 왔으면 좋겠다.
김민광의 안녕달씨는 이면을 이야기하는 에세이다. 이면은 보이는 면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보이지 않는 면(속) 또는 사물의 보이지 않는 뒷면이다. 울어도 마찬가지고 웃음은 더욱 겉뿐인 것을 우리들은 스스로 잘 안다. 내가 지금 웃는 것은 웃는 게 아니야 라고 하는 것처럼 나의 겉은 타인으로부터 웃음을 전달받기를 바라는 태도로 진정한 행복의 웃음이 아닌 겉의 각색된 나의 웃음이다. 이것이 살면서 알아가는 나의 겉이다.

이글에서는 속에서부터 농축되어 익어 나오는 삶의 미소와 행복한 웃음을 무거운 짐으로 메고 다니던 나의 부정을 겉으로 다 드러내는 알몸의 순간이라고 보여 진다. 달씨가 던져버린 허물과 가면의 세계는 달씨의 내면 즉 그동안 부끄러운 속을 보이려 하지 않았던 것들의 부스러기를 한꺼번에 다 쏟아 내는 듯하다. 한동안 그는 다시 숨을 달팽이 빈껍데기를 찾을 것이다. 맞지 않는 빈껍데기들을 맴돌다 스스로(에고)를 발견하고는 이내 빈 몸의 에고의 본향을 거울(파도)에서 찾게 될 것이다.

미술의 표현 방법 중에는 중첩(Overlapping)의 효과라는 것이 있다. 이는 서로 다른 형태의 결합에 의한 화면의 다층적 구조를 형성하는 시각 개념으로 일차 시각화된 인식의 변화를 꾀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회화의 방식에서는 이미지가 중첩을 위한 공간과 빛의 중요도가 작용을 하여 치밀한 계획과 전시공간의 확보가 필요하다. 예술심리학자 루돌프 아른하임은 대상의 중첩 효과에 관하여 이렇게 표현을 하였다. 중첩은 대상의 부분을 제거하는 속성을 가지면서 동시에 대상들을 통합하기 때문에, 사물의 물리적인 완전성이 중요시 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중첩은 새로운 하나의 공간적 차원이 되는 것으로 공간에서 얻은 이미지를 중첩으로 표현하여 공간을 타 시점으로 시각화 하여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미술의 회화에 있어서의 공간의 개념과 공간 구성에서의 조형성에 대한 방법적인 면에서는 중첩에 의한 작위 된 의도적의 효과와 공간의 분할과 재구성이 포스트모던의 구조적 표현 방식의 하나이다.

중첩의 효과는 어떠한 흐름으로 축적되어 상승되고 차원이 빛과 같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해야 사물과 공간이 달라진다. 이렇게 개별화된 작품들이 서로를 호흡하면서 다층적으로 공간과 공간 안에서 계획된 의도를 견인해 내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공동의 세계를 경험 하게 되는 것이 중첩의 이미지이다.
한반도 남북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요원한 것인가? 대한민국의 정상들이 제시한 방법 중의 하나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예로 들어 설명을 하곤 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자체를 의미하거나 그 문제를 혁신적으로 해결하거나 승부수를 둘 때 주로 쓰는 정치적 용어로 어원을 보면 이렇다. 고대 그리스 땅 프리지아에 왕이 없어 왕이 될 사람은 전차를 타고 광장에 나타난다고 하는 전설이 있었다. 고르디우스가 이륜마차를 타고 오자 왕으로 추대하고 그의 이름을 따라 수도를 고르디온으로 세웠다. 왕이 된 고르디우스는 제우스 신전에 자기가 타고 온 마차를 바치고 복잡한 장식매듭으로 신전 기둥에 묶어 두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아시아 원정길에 올라 이곳을 지나다가 칼을 뽑아 신전으로 가서 단번에 칼로 매듭을 베어 버렸고 그 또한 왕이 되었다.

새로운 정부 때마다 진보건 보수건 통일과 한반도 남북의 문제는 하나의 수단으로 작용을 하기 도 한다. 그리고 국민이 보는 시각 또한 너무도 달라 선악의 대립 투쟁사로 얼룩진 이념의 갈등은 현재 남북의 문제를 푸는 방법으로 칼이 아닌 듯하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김민광 작가의 짧은 통일론을 쓴 남북은 서로 다른 생각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는 갈등의 구조로 보인다. 서로의 땅 남과 북을 등지고 바라보는 두 정상의 모습에서는 좌우간 만나자가 이루어지지 않아 보였다. 이 카툰 에세이집 최고의 완성체는 필자로서 ‘남 북’으로 보인다. 일반적 책이 가지고 있는 2차원의 읽기와 보기에서 두 장을 중첩하여 빛을 투과하면 두 정상은 한곳을 바라보며 같은 생각과 같은 미래를 보고 있다. 달씨가 가려 했던 곳이 이곳이었음을 두 장면의 오버랩에서 읽어 지는 것은 한참이 자난 뒤에서나 알게 되었다. 작가는 이 부분을 쉽게 열지 않았고 통일의 미래가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이 고르디우스의 매듭 풀기가 아닌 독자 스스로 한 방향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 이 작품 남북의 에세이 안에 있는 카툰의 의미로 기억하고 기록하고 싶다.

달씨는 달팽이다. 자신의 집을 가지고 있는 가장의 달팽이이다. 달씨는 민달팽이를 꿈꾸는 달팽이이다. 쉼으로서의 소유가 아닌 짐으로서의 소유를 버릴 수 있다면 자신의 내면에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독특함을 발상하는 것과 밖으로 표출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생산적인 인간이라 한다면 그 생산적인 인간은 자신의 내면에서 진정한 자아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외부에서 타자에 의해 심어진 최면에서 깨어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인간이 자기를 위한 내면의 인간이다. 그 반대로 집단에 속에서 타자에 의해 자아를 보는 어리석음은 어느 하나의 관념과 신념에 동일시된 권위적인 인간으로 자아의 발견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자신의 생각을 자아의 발견에 충실하게 소모하고 외부의 권위에 수용당하지 않는 것이 억겁을 다시 시작한다 해도 결코 먼 길이 아닐 것이다. 생산적인 인간이 이성과 양심이 작동하면서 그 작동이 성격에 영향을 끼치면 긍정적인 선순환 구조를 가진다. 자신의 내면의 이성과 자신안의 양심이 살아나야 자유의지를 가지고 정의나 도덕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가장 마지막 에세이 겉 속은 작가가 진정으로 자신을 발견하고 비우고 싶었던 일들을 기록하듯 그려 나아간 듯하다. 저 멀고 높은 파도와도 같은 또 다른 반백년의 삶을 겸허하게 지켜보고 기다려 보는 것도 김민광 작가를 위로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가 그를 위로하며 이야기 하듯 수고로운 삶에 무심했던 달씨에게 따뜻한 위로를 보낸다고 했으니 나 또한 짐이나 되지 않아야겠다.
김기현(화가, 교육자, 미술칼럼리스트)

김민광 달씨 이야기
2020/12/11- 2020/12/24

전시 장소 Venue: 오뉴월 이주헌 O’NewWall Ejuheon
운영 시간Opening Hour: 11시 – 18시 (Sun, Mon Closed)

Artists: 김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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