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ley O'NewWall, last exhibitions

이준형 OUT OF FRAME Joonhyung Lee Solo Exhibition, OUT OF 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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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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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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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에서 탈출해야 비로소 예술이 보인다
심상용 | 미술사학 박사. 동덕여자대학교

[/vc_column_text][vc_column_text]‘멋진 신세계’에서 탈출해야 한다.

 

지난 2014년 이준형은 헉슬리Aldous Huxley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를 현실로 가져왔다. 이준형에 의하면 헉슬리의 상상된 미래와 현실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멋진 신세계’는 우리의 진화가 도달할 귀결이요 이 시대가 선전하는 풍요의 결말이었다. 상상된 미래가 이미 실존의 한 가운데 잠입해 있는 것이다. 이 잠입된 미래에서 존재는 수단화되고 체계에 의해 철저하게 조작된다. 사람들은 모두 수행원일 뿐이다. 체제의 안정, 즉 이퀄리브리엄에 대한 저항은 사라졌다. 복종이 유일한 미덕인 이 세계에선 빵과 통제가 행복의 유일한 조건이다. 물론 빵을 제공하는 자가 신(神)으로 숭배된다. 배부르고 통제된 사람들의 행렬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광경이 목격되는데, 대열의 선두가 완장을 두른 예술가들에 의해 통솔되고 있다는 게 그것이다. 그들은 나팔을 불면서 대열을 이끄는 무리들에 속해 있다. 빵의 복음, 통제의 수단이 된 가련한 예술이 그들의 어깨에 시체처럼 늘어져 있다. 그것으로부터 더 이상 사유와 인식의 의미있는 배양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투기자본과 연동되고 전체주의의 길로 접어들면서 예술도 결국 탈출해야 할 감옥이 되어버렸다.

이준형이 <뗏목 프로젝트>를 통해 여전히 탈출을 시도하는 맥락이 이렇다. 이탈하지 않고선, 늘 꿈꿔왔던 자생(自生), 독립, 벗어나기, 일탈, 해방이 허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웃사이더, 이방인, 국외자, 추방당한 자가 아니고선 예술 자체가 공염불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준형에게 예술은 탈출을 시도하도록 부름받은 땅이다. 당대의 밖으로, 디아스포라로 지속적으로 추방당하는 영역이다. 작가는 이방인의 직관과 감성으로 스스로를 부단히 유배지화하는 선택된 소수다. 광장이 고독을 파면하고, 기만이 준엄한 양심을 갉아먹는 것을 직관하도록, 복종이 아니라 고발의 미덕으로부터 호출된 사람들이다. “아! 고독한 사람이 된다는 것, 어떤 정파에도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 … 오직 진실만을 사랑하면서, 진실이 대지를 뒤흔들고 하늘을 무너지게 할 때조차 진실을 요구하면서 자신의 길을 꿋꿋이 간다는 것은 얼마나 고귀한 일인가!”(에밀 졸라)

이준형은 이미 자신이 직접 제작한 소형 태양광 발전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작품을 통해, ‘선별된 화이트 월 전시’의 체계로부터 일탈을 설계한 바 있다. 그것은 미술관 체계, 또는 아트스타 체계로 명명되는 촘촘한 유폐, 선별된 소수와 폐기처분되는 다수의 구분에 의해 작동하고, 차별화된 보상을 통해 학습효과를 극대화하는 체계로부터 벗어나는 하나의 상징적 경로였다. 고무적이게도 <뗏목 프로젝트>에서 탈출기제는 훨씬 더 정교해졌다. 이번엔 캔버스라는 미학적 뇌관 자체까지 문제 삼음으로써 한층 더 전운(戰雲)이 감돈다. 탈출은 회화라는 기제의 물리적 기반을 해체하는 높은 수위의 저항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모던아트와 그것이 정립해 온 정형화된 기호체계로서의 회화, 완성된 거래품목으로서의 물적 단위가에 대한 직설적인 사카즘 이상이다. 그것은 미술관 체계와 모던아트의 강령에 대한 도발이요, 그것이 퍼트려온 미학적 오만에 대한 고발이다.

분해된 캔버스의 목재 지지대는 탈출용 뗏목으로 재구성된다. 회화라는 신화를 해체해 그것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한 소박한 도구로 환생시키는 것이다. 회화는 억압의 신화학에서 해방의 기호학으로 이전된다. 예술로부터 성공적으로 심장을 분리하고 영혼을 추방해냈던 이퀄리브리엄의 거의 성공을 거둔 계획이 다시 논쟁의 수면 위로 떠오른다. 해체된 신화로 조립된 뗏목을 타고, 이준형은 멋진 신세계로부터의 탈출을 감행한다. 시스템의 볼모로 잡혀 있기를 거부하기에.

 

 

한강, 출렁이는 살아있는 캔버스

 

분해된 캔버스 뗏목을 타고 이준형은 한강의 물살을 가른다. 하지만 왜 한강인가? 왜 한강을 탈출의 경로로 채택했는가? 왜 한강을 해방의 젖줄이 되도록 배치했는가? 이 질문은 한강의 아픈 문명 자체가 하나의 광활하게 펼쳐진 캔버스로 거듭나는 상상 안에서 의미심장한 것이 된다.

아마도 이준형은 그 안에 온 몸으로 뛰어듦으로써만 비로소 가능한, 어떤 전존재적 가담이 전제가 되는 새로운 미학적 지형을 상상했던 것이 아닐까? 그린버그의 피폐한 2차원이 아니라 출렁이는 살아 있는 표면을 지닌 회화, 단토의 권태로운 철학적 오브제가 아니라 노를 젓는 행위가 붓질이 되고 뗏목의 궤적이 선(線)이 되는 해방의 예술론…. 출렁이는 드넓은 캔버스에 해방과 정화의 소박한 뗏목 하나쯤 띄우는 것이 그럴 듯한 출발이 되는 그런 미학 말이다. 분해된 캔버스로 모던아트의 새로운 주석을 삼았던 것처럼.

이준형의 뗏목은 미완의 기획일 뿐인 한강의 문명, 아직 다 털어내지 못한 질고의 물결들을 가로지른다. 해고와 투옥, 고문으로 얼룩졌던 독재 권력과의 싸움이,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와의 힘겨운 전투들이 지나간다. 싸움은 더 치열하고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국가, 정치, 군사력의 우상은 쉽게 폭로되고 비판될 수 있었지만, 시장 우상은 습관과 생활의 영역으로 스며들었다. 지식의 장에서도 경쟁력, 퇴출, 구조조정, 유연 등의 용어가 상위에 배치되었다. 인문학은 파리를 날리는 신세가 되었고, 학생들은 주식회사 삼성에 입사하는 것을 꿈꾼다. 공공적 지식인의 실종은 한강의 기적이 낳은 전형적인 현상이다. ‘한강 르네상스’ 같은 정책은 포장된 부동산업자의 선전과 큰 차이가 없다. 합심, 공동선, 협력, 헌신 같은 가치는 어느새 떠내려가 버렸다. 시민은 억압적 생활세계로 매몰된 채 전례없는 ‘무교양주의’로 인도된다. 한강이 일군 문명에선 예술조차 신속하게 빵의 생산라인에 투입되었다. 지키고 보호해야 할 가치영역이 파국을 맞이한 상황에서 예술이 다른 무엇을 위해 싸우겠는가.

이렇듯 프란시스 후쿠시마의 ‘역사의 종말’이 흐르는 하수가 되어버린 한강을 이준형의 해방의 뗏목이 가로지른다. 진실은 늘 역설적이다. 자신이 뛰어든 세계가 ‘멋진 신세계’가 아니라는 것은 이 순간 얼마나 멋진 일인가. 수상스키를 즐기기 위해 한강에 나온 것이 아니므로, 뗏목이 유람선이 아니라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이 미학적 전망 안에서는 둥둥 떠다니는 쓰레기들이 오히려 맞서야 할 진실의 창구들이 된다.

 

 

떠남 자체가 형식인 회화의 신 지평

 

지난 수년간 이준형의 세계는 회화적 탐색이라는 다소 고전적인 욕구의 산물인 것처럼 보였다. 모티브는 다이빙의 찰나에서 성적 절정 사이를 오갔다. 그같은 모티브가 작가의 회화를 즉각 욕망으로 요동치는 ‘리비도적 표면’과 결부시키도록 하는 요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미지 만큼 안료의 비의지적 물리작용이 긴밀한 관심사였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재빠른 붓놀림과 흐르고 번지는 안료의 긴장을 기반으로 하는 어법을 지나치게 심리적 주석과 결부시키는 건 그래서 오히려 이 세계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교란할 여지가 있다.

이준형의 회화 탐구는 캔버스라는 주어진 틀 안에서 자유를 추구했던 오랜 전통의 흔적을 보여준다. 대상에 구속되지 않음의 의지를 표명하는 주장과 허용, 선택과 포기, 결정과 보류, 투쟁과 투항의 긴장 등이 그것이다. 규범화된 장르적 시각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뗏목 프로젝트>에 공유된 자유의 DNA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캔버스-뗏목은 오히려 자유를 향한 탐구와 실험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는 증거다. 캔버스는 해체됨으로써 훨씬 더 큰, 살아있는 회화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었다. 이준형은 회화를 떠난 것이 아니라, 떠남 자체가 형식으로 귀환하는 회화의 신 지평으로 나아갔을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뗏목 프로젝트>는 이전의 회화적 탐구의 연장이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젤 회화는 더 이상 신화일 수 없다. 캔버스는 분해되고 화폭은 뜯겨졌다. 제도화된 장르, 형식주의의 기호로서 회화의 기념비성은 더는 통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전혀 다른, 도구적인 것으로 화했다. 그 행선지가 화이트 큐브로만 제한되는 것도 아니다. 조명은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담지하는 가치의 차원으로 돌려져야 한다. 캔버스-뗏목이 그렇듯, 탈출이 이 세계의 미학적 노선이 된다. 전에는 관상용이었지만, 이젠 개방된 드넓은 세상의 한 가운데서 실제로 산다. 이 소박한 탈출, 자유를 향한 작은 몸부림을 통해 비로소 많은 것들이 제자리를 찾기 시작한다. 회화는 세계로 나아가고, 세계가 회화의 차원을 복원한다.

유동성에 대해서도 같은 맥락의 해석이 가능하다. 흐르고 번지는 회화적 기법은 도착지의 개방성과 결부되고, 속도감이 제공하는 긴장은 탈출의 불확실성으로 연장된다. 최종 목적지에 대한 단정할 만한 근거는 아직 없다. 항로는 열려 있다. 그렇더라도 최소한의 단서도 없는 것은 아니다. 떠나온 곳으로부터 의미있는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82년 전에 헉슬리가 현대적 감각으로 번역한 바로 그 지옥으로부터 탈출했다. 빵이 담보된 복종, 통제의 대가로 획득한 행복, 화인 맞은 영혼과 메마른 가슴으로부터 떠나온 것이다. 그는 그것들의 세계로부터 최대한 멀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예술이 바로 그러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vc_column_text][/vc_column][/vc_row][vc_row full_width=”” parallax=”” parallax_image=””][vc_column width=”1/1″][vc_empty_space height=”32px”][vc_column_text]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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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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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nhyung Lee, Out of Frame, cinema graph, 2014[/vc_column_text][vc_empty_space height=”10px”][/vc_column_inner][/vc_row_inner][vc_row_inner el_id=””][vc_column_inner el_class=”” width=”1/1″][vc_single_image image=”389″ border_color=”grey” img_link_large=”yes” img_link_target=”_self” img_size=”full”][vc_column_text el_class=”img-caption”]이준형, 무제, 린넨에 유채, 163 x 131 cm, 2014
Joonhyung Lee, untitled, oil on linen, 163 x 131 cm, 2014[/vc_column_text][vc_empty_space height=”10px”][/vc_column_inner][/vc_row_inner][vc_row_inner el_id=””][vc_column_inner el_class=”” width=”1/1″][vc_single_image image=”399″ border_color=”grey” img_link_large=”yes” img_link_target=”_self” img_size=”full”][vc_column_text el_class=”img-caption”]이준형, 무제, 린넨에 유채, 163 x 131 cm,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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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nhyung Lee, Out of Frame_raft, red Japanese cedar, 300 x 75 x 9 cm, 2013[/vc_column_text][vc_empty_space height=”10px”][/vc_column_inner][/vc_row_inner][vc_row_inner el_id=””][vc_column_inner el_class=”” width=”1/1″][vc_single_image border_color=”grey” img_link_large=”yes” img_link_target=”_self” img_size=”full” image=”392″][vc_column_text el_class=”img-caption”]이준형, Out of Frame, 단채널 비디오, 32분 21초, 2014
Joonhyung Lee, Out of Frame, single channel video, 32’21” duration, 2014[/vc_column_text][vc_empty_space height=”10px”][/vc_column_inner][/vc_row_inner][vc_row_inner el_id=””][vc_column_inner el_class=”” width=”1/1″][vc_single_image image=”475″ border_color=”grey” img_link_large=”yes” img_link_target=”_self” img_size=”full”][vc_column_text el_class=”img-caption”]이준형, Out of Frame_스틸 샷 시리즈, 30 x 40 cm, 2014_세부 이미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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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nhyung Lee, Out of Frame_still shot series, 30 x 40 cm, 2014_detail[/vc_column_text][vc_empty_space height=”10px”][/vc_column_inner][/vc_row_inner][vc_row_inner el_id=””][vc_column_inner el_class=”” width=”1/1″][vc_single_image image=”394″ border_color=”grey” img_link_large=”yes” img_link_target=”_self” img_size=”full”][vc_column_text el_class=”img-caption”]이준형, Brave New World, 가변크기, 혼합재료, 2014
Joonhyung Lee, Brave New World, variable size, mixed media, 2014[/vc_column_text][vc_empty_space height=”10px”][/vc_column_inner][/vc_row_inner][/vc_column][/vc_r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