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部屋は語る방이 말하다 Tales of Room


곤도 유카코 近藤夕夏子개인전 Kondo Yukako Solo Exhibition
部屋は語る 방이 말하다 Tales of Room
2021/10/22- 2021/11/13

전시 장소 Venue: 오뉴월 이주헌 O’NewWall Ejuheon
운영 시간Opening Hour: 13시 – 20시 (Sun, Mon Closed)

주관/주최 : 오뉴월

Introduction

시간의 흔적 그리고 사람의 흔적 – 곤도 유카코 개인전

에미코 키다
오타니 대학교 교수

곤도 유카코의 작품은 죽음을 예감하게 하는 동시에 고요하면서도 확고한 힘을 느끼게 한다. 그가 한국으로 건너 오기 전, 일본에서 제작했던 작품들은 고운 빛깔을 특징으로 하는 유기적인 형태의 추상화였다. 작가의 이러한 작품 경향은 자신의 건강에 대한 불안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고 하겠다. 그 시절 그의 작품 속에 묘사된 사람의 내장처럼 보이는 물체는 작가 자신의 복잡다단한 내부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우주와 소통하고자 하는 작가의 광기와도 같은 강렬한 에너지가 있었다. 이러했던 그의 화풍은 그가 한국에 정착하면서 완전히 탈바꿈했다. 그러나 그 뿌리는 일본 시절의 추상화 시대에 있다는 생각이다. 그의 그림은 여전히 죽음에 대한 불안과 삶의 덧없음을 표현하고자 한다. 작가는 이러한 작품들을 바니타스(Vanitas; 무상함)라고 설명한다.

보태자면, 일종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의 표출이리라. 작가는 태어나 자란 땅이 아닌 한국이라는 외국 땅에 살면서 먹었던 것, 사용했던 것을 붓으로 하나하나 세밀하게 그리면서 자신의 일상을 기억하는 것이다. 영원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덧없기만 한 시간의 연속이야말로 곤도 유카코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핵심이며,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철학적인 사고에 빠져들게 한다.

이번 개인전에서 곤도 유카코는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20 점의 작품이 출품되는데 그 중 피아노가 있는 거실이 그려진 큰 작품이 관람자의 눈길을 끌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 작품은 필자가 나고 자란 오사카 집을 그린 것이다. 나의 부모님과 오빠, 이렇게 넷이서 살던 이곳은 부모님이 상점을 운영하면서 고생 끝에 지으신 집이다. 1980년경의 추억을 하나 소개하자면, 나의 어머니는 자신이 마음에 들어 하셨던 물건을 하나씩 모아 집을 예쁘게 장식하셨고, 아버지는 문이나 마루, 계단에 쓰인 목재가 얼마나 훌륭한 건지 늘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세월이 흘러 오빠는 결혼해서 제 식구들과 분가해 살고 있으며, 부모님도 요 몇 년 사이에 세상을 떠나셨다. 나 역시 태어나 자란 오사카 집을 떠나 지금은 교토에 있는 직장 근처에서 살고 있다.

사람들이 떠나고 시간이 흘러 이제는 흔적만 남아버린 빈 공간이지만, 아직도 이곳은 왁자지껄함이 남아 있다. 왜 일까? 그것은 아마도 어머니가 정성스레 모아두신 예쁜 장식품을 비롯해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 오빠가 들었던 클래식 음악 CD, 그리고 내가 평양에서 사온 주체사상 모형탑 등, 조용한 공간 속에 놓여 있는 여러 물건 속에 사람의 흔적이 새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따뜻한 작품을 곤도 유카코가 그릴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우리 집을 제 집처럼 드나들던 나의20년 지기 친구였기 때문이며, 또한 우리 가족을 자신의 가족처럼 대하고 관심을 가져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부재와, 그 부재로 인해 우울해질 수도 있는 공간을 그 사람을 추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묘사하는 마법 같은 작업. 이번 작품들도 무상함을 그리는 바니타스의 하나라고 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타자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핵심에 있는 것 같다.

고요한 그의 작품 속에서 우리는 때때로 삶에 대한 해학과 애교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곤도 유카코의 작품 세계는, 작가의 기쁨과 고통을 초월해서 사람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작가의 따뜻함과 성실함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붓의 터치 하나하나가 시간의 축적을 나타나며, 이는 보는 이에게도 커다란 위로가 된다. 작가의 냉철하지만 뜨거운 시간을 이번 전시회에서 공유하기 바란다.

Traces of Time and Traces of People–Yukako Kondo Solo Exhibition                  

                          Emiko Kida
(Professor of Otani University)

The works of Yukako Kondo makes one ponder upon death and at the same time, feel serene but firm strength. The works she created in Japan before she came to Korea were abstract paintings characterized by organic forms and exquisite colors. The artist’s tendency to create such works are deeply related with anxiety over her own health. The object that seem like human organs described in her works back then could be representations of his complicated mind, but there is also this vigorous and intense energy that is almost like lunacy, strong desire of the artist to communicate with the universe.

This style of her in the past completely changed as he settled in Korea. However, the roots can be traced back to abstraction of her days in Japan. Her paintings still try to express the anxiety over death and futility of life. The artists explains that such works are of Vanitas painting.

They could be a display of Memento mori of sort (remember death). While painting the things that she ate and used, one by one, as he lived in this foreign land Korea away from the land she was born into and lived, she is remembering her daily life. The continuity of time that seems eternal but futile is the core of Yukako Kondo’s works, and this enables the audience to plunge into philosophical thinking.

Yukako Kondo reached a new level through this solo exhibition. From a total of 20 pieces of works submitted, I presume that the huge painting of a living room with a piano will draw the audience’s attention. In fact, this is the home in Osaka where I was born and raised. This home where my parents, big brother and I lived together was built on my parent’s toil and moil of running a liquor store. To introduce a memory of mine back in the 1980’s, my mother would collect objects that she likes to decorate the house, and my father was always proud of the quality of the wood used for the doors and stairs. Time passed by and brother got married and created a family of his own, and my parents passed away in recent years. I left the home in Osaka where I was born and raised, and am living near my workplace in Kyoto. It is an empty space where only traces of the past and the people who left remain, but the place still contains boisterousness. Why? Perhaps it is because the many objects such as the beautiful ornaments my mother collected, the photographs I took with my father, the classic music CD my brother listened to, and the miniature tower representing Juche (self-reliance) ideology I brought from Pyeongyang, contain traces of people.

Yukako Kondo could draw these paintings of warmth because he has been a friend of mine for 20 years who frequently visited my home as if it was her own, and she paid attention to my family as she would do for her own family. A magical work of portraying a space of absence and thus, the feeling of depression… These works could be of Vanitas which describes transience of life, but at the heart lies the artist’s warm eyes and attention to others.

In her tranquil works, we would often feel the humor and charms of life. Yukako Kondo’s world of artworks could be described as the expression of warmth and diligence of the artist who surpassed joy and pin and wishes to live together with people. Every single brushstroke represents the accumulation of time, and this provides huge comfort to the audience. I truly hope that her sober but blazing time can be shared through this exhibition.

내 버섯들은 밤을 밝히네 My Ghost Fungi Illuminate the Night


배소영 개인전 Soyoung Bae Solo Exhibition
내 버섯들은 밤을 밝히네 My Ghost Fungi Illuminate the Night
2021/03/12- 2021/04/03

전시 장소 Venue: 오뉴월 이주헌 O’NewWall Ejuheon
운영 시간Opening Hour: 13시 – 20시 (Sun, Mon Closed)

전시 서문

그리하여 꿈이 밤을 밝히었다*

1.

밤이 되자 연둣빛을 발하는 한옥에서 안개가 피어오른다. 희끗한 기체는 방과 방 사이를 건너다니고, 대청에서 지붕을 받치고 있는 기둥을 휘감고 돌기까지 한다. 전시장 군데군데 놓인 오브제들의 서먹함을 감추려는 듯, 혹은 이들을 한 데 뭉쳐 끌어안으려는 듯 안개는 좀처럼 걷히지 않는다.

조금씩 형체를 드러내는 것들 중에는 무리를 이룬 오리 장난감도 있고 천장에 걸려 축 늘어진 오징어, 새끼줄에 묶인 생선, 바닥에 꼭짓점을 대고 비스듬히 서 있는 하트, 벽에서 튀어나온 손, 둥그런 카펫 위에 놓인 소파도 있다. 이름과 쓰임에 대해 대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들이다. 언급한 사물들은 친숙한 존재는 아닐지라도 개별적으로는 우리가 늘 갖고 놀고 먹고 만져 보던 것이다. 

안개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보면 배소영의 오브제들은 저마다 뭉툭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크거나 절단되거나 위태롭게 뾰족한 만듦새를 하고 있다. 이것들은 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여기에 도착한 거지? 앞선 질문을 붙들고 각각의 사물 앞에 서면 우리는 시시콜콜한 탐정 놀이를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탐정의 덕목은 난처한 질문을 가능한 많이 만들어내는 데 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이 난처하게 만드는 대상은, 오브제의 익살스런 외양이 선사하는 재미를 익숙한 이름과 경험으로 대체하는 우리 사고의 관성이다. 사람보다 큰 오징어를 먹은 적 있나? 오싹한 촉감의 손을 잡아본 기억은? 있다면 언제고 누구의 손이었지? 얼굴이 지워진 가족사진을 전시하는 사진관을 본 적 있던가? 

정확한 때와 장소를 떠올리지 못하는 난감은, 견딜 수는 있지만 신경에 거슬리는 잠결의 가려움 같다. 만약 깨어 있는 시간 동안 우리가 거주하는 장소에서 이 낯선 오브제들이 떠나온 자리를 찾을 수 없다면, 사물의 자유로운 이동과 변신이 가능한 별도의 시간과 공간을 상상해볼 수 있겠다. 마침 시간은 밤이고, 이제 탐정은 누군가의 꿈에 잠입하려 한다. 여기 누가 받아 적은 잠꼬대가 있네!

2.

비가 내린 후 산에 가면 버섯이 여기저기서 자라난 광경을 볼 수 있다. 마치 돌림 노래를 부르듯 포자들은 적합한 땅을 찾아 버섯의 신체를 떠난다. 버섯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형태를 바꾸고 이동할 뿐이다. (작가 노트)”

하지만 이 단서는 글의 주인이 언제 어디서 어떤 버섯을 발견했는지, 또 그 모습이 얼마나 독특했기에 형형색색의 오브제들로 이 낡은 집을 채우는 데까지 이르렀는지 귀띔해주지 않는다. 여기에는 버섯의 생김새를 적극적으로 흉내 내는 아무런 오브제도 없을 뿐만 아니라, 몇몇은 버섯의 돌림노래를 비웃듯 즉흥적으로 자라 또 다른 누군가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버섯”이 사라지거나 금세 잊혀지는 사물과 현상에 대한 비유라면, 오브제의 산만한 배치나 엉뚱한 등장은 포자의 확률적인 번식 및 생장과 닮아 있다. 사라진 줄 알았던 것들은 단 한 번도 완벽히 사라진 적 없으며, 예기치 못한 순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견할 수 없는 모습으로 복귀한다. 

가령 환대와 애정에 대한 상징으로 우리가 곧잘 이해하는 하트라는 기호는, 다가오는 마음에 상처 주길 마다하지 않겠다는 듯 뾰족한 가시와 촉으로 무장하고 있고, 푹신한 소파로 위장한 안마 의자는 조금의 안락함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시종일관 원하지 않는 세기로 등을 주물러 댄다. 또 얼마나 위험한 모험이 우리를 기다리길래 흠뻑 젖어 주눅 든 고양이는 이토록 비장한 당부까지(It’s too dangerous to go alone! Take this.) 건네는 것일까? 

갑자기 튀어나오는 기억과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뒤섞는 꿈의 무대는, 고양이 밈(meme)이 외치는 경고가 등장하는 게임 속 고난도 스테이지 같다. 그러나 게임은 결국 놀이를 달리 이르는 말이고, 놀이의 핵심은 유희에 있다. 의지와 관계없이 미끄러지는 경험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지만, 미끄럼틀 위의 우리는 즐거운 것처럼, 이곳을 슬기롭게 통과하는 요령은 유사한 언술로 되풀이되는 감각에서 샛길을 찾는 재미에 있을 것이다. 이 상상을 구체화하기 위해 어떤 오브제들은 위장하거나 무장하거나 비장해지기를 택했으나, 또 그러거나 말거나, 발 없는 오리는 벌써 미래의 눈보라를 뚫고 여기에 도착해 방 한구석을 유장하게 가로지른다.** 연둣빛 꿈이 밤을 밝히고 있다.

김현수 (스페이스 오뉴월 큐레이터)

*글의 제목은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Roran Barthes, 1915-1980)의 저서 『사랑의 단상』 (김희영 옮김, 서울: 동문선, 2004)에 실린 「그리하여 밤이 밤을 밝히었다」 에 착안하여 지었다. 바르트는 반복해서 사용되는 ‘밤’이라는 낱말을 ‘암흑’과 ‘어둠’으로 구분하고, 전자를 소유와 집착으로 인해 눈이 먼 상태로, 후자를 소유와 집착으로부터 해방된 상태로 다시 구별한다. 서문 제목에서의 ‘밤’은 낮과 상대되는 시간적 개념과 더불어, 판단과 예측이 모호해지는 장소의 성격을 갖는 공간적 개념으로 사용했다.


**지난 겨울, 폭설이 도처에 남기고 간 것은 한 무리의 눈-오리들이다. 공간을 머금을 수 있는 작고 귀여운 사물이 더 많이 발견될수록 눈 온 뒤 풍경은 더욱 다채로워질 것이다.


Artists: 배소영

노리요리 시라카와 Noriyori Shirakawa “Blue Seen Through”

Introduction

Blue Seen Through비치는 푸름


시라카와의 회화 작업이 지니는 가장 큰 특징은 은 또는 알루미늄 박이
쓰인다는 점이다. 이들 소재를 채택하기까지 작가는 빛을 다채로이 표현하고자
회화적 실험을 거듭해왔다.
정교하고 섬세히 구성된 이번 전시작들은 소재와 회화적 기법에 대한 그의
열정적인 탐구와 지식이 돋보인다. 삼차원의 환영을 평면에 구현하는, 수많은
미술가의 오랜 역사적 전통적에 확고히 선 작가는 현대적 회화의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고자 조용하지만 일관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시라카와의 작업에 나타나는 모티브는 유기적 패턴이나 건축 구조의 일부를
연상케 하며 거리와 움직임에 대한 수수께끼 같은 감각을 만들어낸다.
최근 작가는 자신의 2차원 시각언어를 3차원 세라믹 오브제로 변형시킨
작품을 실험, 창작하고 있다. 얇고 깨끗하지만 광택이 없는 사발 모양의 몸체와
반투명하고 푸른색으로 빛나는 유리 층의 질감과 빛 반사의 대조는 미묘하고도
강렬한 시각적 영향을 남긴다.
시라카와는 1969년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예술대학을 졸업했고 현재
아이치에서 생활하고 있다.

-하라다 아키카즈 HRD Fine Art Director (Kyoto)

Blue Seen Through

One defining characteristics of Noriyori Shirakawa’s work is
the use of metal leaf such as silver or aluminum leaf, which
is intrinsically connected with the exploration of painterly
expression of light.
His paintings are elaborately and delicately constructed, backed
up by his deep knowledge and insight into painting techniques
and materials. Firmly standing upon the long historical tradition
of painting in which the many painters have pursued three dimensional
illusion on two-dimensional plane, Shirakawa is
making quiet but consistent efforts to open up a new horizon of
contemporary painting.
The motifs that appear in his paintings are, whether they look like
an organic pattern or a part of architectural structure, exquisitely
executed so that they produce an enigmatic sense of distance and
movement.
Recently, Shirakawa is also working on experimenting and
creating ceramic works, transforming his painterly, twodimensional
visual language into three-dimensional objects. The
contrast of texture and light reflection of thin, immaculately
white but glossless bowl-shaped body and translucent, glittering
blue-hued glass layer leaves a subtle but strong visual impact in
the viewer’s eye.
Shirakawa was born in Tokyo in 1969 and currently lives and works
in Aichi.

-Harada Akikazu HRD Fine Art Director (Kyoto)

강재원, 이승훈 Kang Jaewon, Lee Seoughoon – SEASON 2

강재원, 이승훈 Kang Jaewon, Lee Seunghoon Exhibition

SEASON 2
2022/06/17- 2022/07/03

전시 장소 Venue: 갤러리 오뉴월 Gallery O’NewWall
운영 시간 Opening Hour: 11시 – 18시 (Mon, Tues Closed)

Introduction

갤러리 오뉴월의 기획전 《SEASON 2》에 조각가 강재원과 미디어 아티스트 이승훈이 참여한다. 《SEASON 2》는 현대미술 신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보여준 작가들을 초대해 각자의 새로운 단계를 모색하는 연례 기획전이다.

최근 조각 관련 전시와 담론이 줄을 잇는 가운데 강재원은 단연 돋보이는 작가다. 서울 시립 북서울미술관의 <조각충동>전에서 전시장 1, 2층을 뚫고 솟은 ‘인플레이터블’ 작업을 선보였다. 플랫폼 엘에서 무용수의 퍼포먼스와 어우러지는 ‘일시적 조각’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각 표면을 상정한 텍스처를 활용했던 시기의 인플레이터블 작업과 금속성 원단으로 착시를 유도한 최근 작업에서 파생된 알루미늄 조각 5점을 내놓는다. 그리고 이들 실물 작업을 구현하는 지난한 모델링 과정의 부산물이자 그 자체로 매혹적인 시각 효과를 뿜어내는 영상 작업을 곁들였다.  

지난해 OCI 미술관에서 개인전 <만들어라 Make>를 연 이래 이승훈은 독보적인  ‘시간_회화’ 작업을 무서운 기세로 펼쳐 보이고 있다. 강재원 작가의 컴퓨터 모델링 작업처럼 이승훈 작가는 디지털 평면 위에 수천수만 번의 획을 공들여 그린 다음 몇 가지 애니매이션 기법으로 조각하듯 이미지를 뭉치고 흩뜨려 놓는다. 프레임 바이 프레임, 컷아웃 기법, 그리고 3D 렌더링 애니메이션을 한 화면에서 동기화시킴으로써 생겨나는 ‘언케니’한 형상과 움직임은 메시지나 형식 실험 같은 담론 너머의 심연. 또는 아득한 시간의 지층을 가리키는 듯하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올해 제작한 신작 <섬Island>을 비롯해 5점의 시간-회화 작품을 70인치 대형 화면으로 상영한다. 더 큰 활약이 기대되는 두 작가의 ‘시즌 2’를 기대한다.

강상훈 (갤러리 오뉴월 공동대표)

전보배 개인전 Jeon Bobae Solo Exhibition 주헌 리 Juheon Lee

전보배 Jeon Bobae

2022/05/27- 2022/06/18

Juheon Lee

전보배

풍경에서의 접속을 꿈꾸는 전시는 장소와 읽을거리를 찾아 도착하였다. <Juheon Lee>는 2017년 오뉴월 이주헌에서 열린 김지현 작가의 전시 <진취적 관객론_관객 행동론 연구 The Realm between Spectator and Performer>에 대한 리액션으로, 해당 전시를 통해 공간이 장소로 변모하게 되는 장소애 Topophilia의 경험과 장소 이해의 충돌에 반응한다. 스페이스 오뉴월은 2016년 미술계 내 성폭력 관련 젠더 이슈가 배태되었고, 이 사건으로 인해 이주헌 利宙軒은 본인에게서 제외하고자 하는 장소임과 동시에 스스로가 공간에 가지는 장소애로 충돌한다. 이주헌에 가지는 장소애는 공간과 사회적 관계로부터 기인한 의심과 방해로 다시금 인식되는데 그것이 단순히 스스로의 머릿속에서만 간직하고 있는 장면일지라도 더 이상 해당 장소와 기억을 온전히 획득할 수 없게 되었음을 감지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공간이 더 이상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 낭만화시킨 기억의 장소가 아닌 사회적 관계를 통해 재형성된다는 점을 알린다.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의미의 중심인 장소를 배제하는 것은 교환될 수 있는 문제인지 장소 욕구에 반응하는 텍스트로 대응하고 이 장소를 어떤 방식으로 재획득할 수 있는가에 대한 글을 풀어놓는다.

  2017년 여름 무지갯빛이 일렁이던 전시장의 물웅덩이에 상황이라고 적힌 캡션을 보고선 샐쭉댔던 기억은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마주했던 기억이다. 우연한 어떤 날로부터 온 끈질긴 인상은 어쩌면 주체적인 미술 감상법이라고도 볼 수 있을 만한 전시로 반응하며, 레퍼런스와 카피라이트로 뒤덮인 전시는 미술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 경로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한다. 조각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조각은 아이클라우드에 고속버스터미널의 공중 화장실에 그리고 아무개의 전시에도 있다. 홀로서는 온전히 세워질 수 없는 형상이 멈춰질 수 없는 시간에서 조각으로 기록되기도 하고, 물질들이 계속해서 이동하는 거리에선 익명이 잠시 기대어 놓은 아름다움을 쉬이 훔치기도 한다. 대개는 유예시키고 있는 상황들로 그렇게 쓰이는 용도가 아닌 것들끼리 지금에 용도에 꼭 맞는 모습이 벌어진 상황에선 많은 것이 엿보이고 그 모습은 지켜본 이로 하여금 어떤 형태는 마음까지 담을 수 있다고 여기도록 만든다. 그렇게 여기저기서 꿔다 쓴 이미지들은 조각은 하나의 상태라는 것을 비추고 있다. 

  스웨덴의 그립스홀름 성에는 박제사자와 그와 관련한 짤막한 에피소드가 전해 내려온다. 1700년대 스웨덴, 성 밖에 사람들은 살면서 사자라는 동물을 본 적이 없었다. 아프리카 알제리로부터 여러 야생동물을 선물받았던 국왕 프레드리크 1세는 그중에서도 사자를 가장 애지중지하였는데, 시간이 흐른 뒤 사자가 죽자 땅에 매장시켰다. 그런데 몇 개월이 흐른 뒤에도 안타까운 마음이 사그라들지 않았던 왕은 사자를 땅에서 꺼내 올려 당시 스웨덴의 제일가는 박제사를 성으로 부른다. 원래의 형체를 알기 힘들 정도로 부패해버린 사자의 거죽을 가지고 왕은 박제사에게 박제를 명했고 이를 거스를 수 없던 박제사는 자신이 한 번도 본 적 없던 동물의 형상을 쫓아야 했다. 필요한 모든 정보를 구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어떠한 이미지든 간에 구현이 가능하다는 지금에서 당시 박제사의 상황은 지나치게 판타지로 온다. 미지에 확률로써 가까워지기 위한 선택을 한 박제사의 손에서 상상이란 신비의 탈은 손쉽게 벗겨지고, 300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어지는 지독한 놀림거리인 결과물을 후세에 남겼지만 그의 이름은 지워진 채다. 특정한 시간대에 사건의 기록으로 남은 짤막한 에피소드를 복기하며 지워진 이름이 가졌던 입장에 저절로 들어앉는다. 그냥 그것이 불현듯 남긴 길어진 자리를 배회한다.

전시 장소 Venue: 오뉴월 이주헌 O’NewWall Ejuheon
운영 시간Opening Hour: 11시 – 18시 (Sun, Mon Closed)

Artists: 전보배

박미례, 신용재, 최재영 Mirae Park, Yongjae Shin, Jaeyoung Choi – 회화행동 繪畵行動 Act on Painting

 

박미례, 신용재, 최재영 Mirae Park, Yongjae Shin, Jaeyoung Choi 회화행동 繪畵行動 Act on Painting 2021/11/19- 2021/12/11 전시 장소 Venue: 우암창작소 Uam Changjakso 운영 시간 Opening Hour: 13시 - 18시 (Sun, Mon Closed)

청주 원도심 우암동 주택가에 우암창작소 개관, 개관전 <회화행동>展 개최

11월 19일 청주시 우암동 주택가에 위치한 우암창작소(청주시 청원구 대성로 264-10)가 개관전 <회화행동>展을 개최하며 문을 열었다. 최근 다양한 전시 활동으로 호평을 받고 있는 박미례, 최재영, 신용재 작가가 참여한 그룹전시 <회화행동>전은 회화를 통해 사회적인 이슈에 반응하며 작업하는 청년 예술가들의 태도를 보여주는 전시다. 청주를 기반으로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재영, 신용재와 함께 청주창작스튜디오를 인연으로 충북대에서 강의하며 청주와 서울을 오가는 박미례 작가가 참여한다. 지난 10월 영등포 스페이스 XX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최재영 작가는 자본에 의해 차별 받는 인간 노동에 대해 고민해왔으며 2018년 청주시립미술관 <내일의 작가>전에 대형화면을 가득 채운 닭장 작품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최근 흰색 방호복을 입은 이를 화면에 등장시키며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환기시키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박미례 작가는 다양한 동물을 그린 작품을 전시 중인데 베를린 박물관에서 100여 년 동안 전시되었던 박제 고릴라 ‘바비’를 실견하고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질문하는 듯한 바비를 사실감 있게 그린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또 낙농산업의 사슬 속에서 착취당하는 젖소의 삶을 돌아보는 젖소 가족 등, 감동을 자아내는 여러 대형 작업을 전시한다. 하늘을 그리는 작가로 잘 알려진 신용재 작가는 더욱 표현주의적이고 자유로운 붓질로 징후적인 구름 빛이 위기를 경고하는 듯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 서문에서 최재영 작가는 “썩은 돼지 사체가 ‘퍽’하는 소리와 함께 땅 위로 밀려 올랐다.”라는 기사를 접하고 방호복을 입은 인물과 생매장된 가축 매몰지가 초현실적으로 다가와 이를 화폭에 옮기는 계기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 “세상을 나와 비슷한 눈으로 바라보는 동료들과 함께 전시하며 세상에 이야기를 건네면 좋겠다고 생각해 동료들과 함께 전시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이번 <회화행동>전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청년작가기획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최재영 작가와 2019년부터 함께 작업하며 일해온 오뉴월과의 협업으로 진행되었다.

얼마 전 도시재생사업이 끝난 우암동에 만들어진 우암창작소는 개관과 함께 청주 예술인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원도심 도시재생과 문화예술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평가되며 추후 행보를 기대하게 만든다.

 

윤제호 Jeho Yun – ANOTHER SPACE IN THE WALL


윤제호 개인전 Jeho Yun Solo Exhibition
ANOTHER SPACE IN THE WALL
2022/04/22- 2022/05/08

전시 장소 Venue: 갤러리 오뉴월 Gallery O’NewWall
운영 시간Opening Hour: 11시 – 18시 (Mon, Tues Closed)

Introduction

최근 미디어아트 신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보이고 있는 윤제호 작가는 특히 사운드와 결합된 미디어 퍼포먼스에 특화한 여러 전시와 커미션 작업을 진행해왔다. 올해 3월 여의도 더 현대 서울 1주년 기념전에 초대되어 백화점 6층 사운드 포레스트를 레이저와 안개로 가득 채운 멀티 미디어 레이저 쇼(Art of The Future)를 진행했고 지난해에는 현대자동차의 커미션으로 디뮤지엄D MUSEUM에서 ‘제네시스 엑스 로드쇼’ 초청 작가로 작업한 바 있다.

이번 전시 <ANOTHER SPACE IN THE WALL>은 윤제호 작가의 동명 오디오 비주얼 작품을 전시장 전체에 구현하는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가상의 벽에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구현한 소리와 그에 반응하는 3D 오브제, 포그 머신이 놓인다. 디스플레이에 맞춘 기하학 형태의 레이저 매핑에 더해, 십여 대가 넘는 무빙 레이저와 애니메이션 레이저는 소리와 빛이 둘러싼 환영적 공간을 만들고 있다. 한계와 단절의 의미인 벽면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소리-이미지 공간은 시각과 청각 같은 감각 행위를 낯설게 만들며 그 본질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른바 ‘촉지적 감각’으로 기존 감각 구분의 모호함을 몸소 경험케 하는 의도다.

작가는 음악과 소리, 형식과 비형식 같은 여러 구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나아가 우리의 감각 자체가 빛이자 소리로 만들어진 결과이기에 주관적 감각행위와 객관적 실체의 구분 또한 무의미하다고 본다. 암막 속에서 맥놀이하는 레이저 빛을 구현한 의도도 마찬가지다. 어둠은 팽창하는 우주의 빛을 망막이 따라잡지 못한 것이고, 우리가 지각하는 어둠은 실제 우리에게 ‘도달할 수 없는 빛’일 뿐이라는 아감벤의 통찰을 상기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작곡가이기도 한 그에게 음악과 소리 또한 ‘도달할 수 없는 침묵’일지도 모른다.

강상훈 (스페이스 오뉴월 공동대표)



ANOTHER SPACE IN THE WALL – Jeho Yun Solo Exhibition                  

위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정보화 세계에 떨어진 건에 대하여 About a Person Who Thinks with Stomach and Intestines Fell Into The Information World


김윤섭 개인전 Yunseob Kims Solo Exhibition
위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정보화 세계에 떨어진 건에 대하여 About a Person Who Thinks with Stomach and Intestines Fell Into The Information World
2021/09/03- 2021/09/25

전시 장소 Venue: 오뉴월 이주헌 O’NewWall Ejuheon
운영 시간Opening Hour: 13시 – 20시 (Sun, Mon Closed)

주관/주최 : 오뉴월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 예술경영지원센터

작가의 말

<위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정보화 세계에 떨어진 건에 대하여 About a person who thinks with stomach and intestines fell into the information world>
는 *이세계물 장르로 알려진 <전생했더니 슬라임이었던 건에 대하여>라는 망가 애니메이션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제목이다.
디지털과 메타버스 등 가상 세계가 전면화하며 인간의 시각은 물질과 물체의 표면에 맺히는 것이 아니라 매끈한 모니터나 디지털 픽셀에 맺히게 되었다. 예술과 회화의 인지에도 이러한 환경은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기존 언어로 예술 작품을 해석하는 차원을 넘어 작품을 하나의 정보뭉치 혹은 개별 정보단위로 분석함에 따라 어느 순간부턴가 데이터로서 존재양태와 형식이 강요되고 있는 듯하다.
이번 전시는 문득 이세계에 떨어진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현란한 변화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나라는 존재에 관한 물음이다. 위장의 외침과 고동치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하나의 정보뭉치로 실존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내가 만들어 내는 작품들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데이터로서 탄생하기를 거부하는 작품은 어떠한 형식이 될 수 있을지 더욱 실험하고 부딪혀 볼 생각이다.
 
 
*일본에서 2015년도 즈음부터 폭발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해, 현재는 라이트 노벨 대다수를 차지하는 장르이다.
크게 이세계 전생물과 이세계 전이물로 나뉘며, 기본적으로 현실에서 살던 주인공이 현실과는 다른 세계(이세계)로 넘어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김윤섭


김민광 개인전 <안녕 달씨>

오뉴월 이주헌은 김민광의 카툰 에세이 발간을 기념하여 김민광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전시되는 작품들은 <안녕 달씨> 에 수록된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으로 장년이 되어가기까지의 삶을 담은 이미지를 통해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공유한다.

책소개
엉뚱하고, 달달하고, 무서운 카툰 에세이
누구나 한 번쯤 질문하는 ‘나는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가는 가? 에 대한 철학적 고민과 물과 불, 선과 악, 빛과 어둠에 대한 가치들이 갖는 모순을 시각디자이너의 상상을 더해 쓰고 그린 자전적 에세이다.
안녕달씨는 주인공 달씨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곳에서 태어나 집도 없고, 나침반도 없는 세상에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달씨의 가방은 처음에 유치원 가방처럼 노란색이었다가, 군대를 다녀와서는 파란색으로 그리고 중년이 되어선 주황색으로 바뀐다. 49살 가장의 무게도 글 곳곳에 묻어있다. 인생의 링위에 오른 달씨의 라운드는 49이거나, 자신의 현재 상황을 야구 경기로 4회말 투아웃 마운드에 놓인 투수라고도 비유한다. 승리투수가 되기 위해선 5회말까지 등판해야 한다. 마지막은 인생의 여정을 마친 달씨가 다시 환생을 위해서 태어난 시점으로 돌아가기 위해 걸어왔던 길을 역으로 오르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리고 다시 반복되는…

서평 1
살아냈거나 견뎠거나… 마흔아홉에 돌아보는 삶.
김민광은 시각디자이너다. 20여 년 전에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니 정체성에 변화는 없다. 다소 엉뚱한 면이 있다는 것도 바뀐 게 없다. 여기서 엉뚱하다는 말의 의미는 일상적인 상상의 틀을 여지없이 깨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그것은 그저 엉뚱함에 그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책을 펴낸 것은 후자 쪽에 속한다.
카툰 에세이 『안녕달씨』는 그 ‘엉뚱함’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태어나서 49년 동안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일러스트를 직접 그렸는데, 이야기에 그림을 입힌 건지 그림에 이야기를 곁들인 건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일체감이 단단하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달팽이 캐릭터를 처음 스케치한 게 1995년이라니, ‘달씨’는 25년 동안 김민광의 마음속에 살다가 세상에 나온 셈인가?‘달씨’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안녕달씨』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모든 인생이 그렇듯이, 어디서 왔는지는 알 수 없다. 길거나 짧은 46편의 연작은 개인의 기억과 경험에서 도출한 다양한 주제를 ‘양면성’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풀어 놓는다. 선과 악, 빛과 어둠, 물과 불, 이런 모순적인 가치들이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철학적 고민이 코믹한 은유(隱喩) 속에 녹아 있다. 집도 나침반도 없는 세상에 던져진 달씨의 행보는 사각의 링 위에 오른 49살 가장(家長)의 고독함과 같은 것이다. 처음엔 유치원 가방처럼 노란색이었다가 군대를 다녀와서는 파란색, 중년이 되어서는 주황색으로 바뀌는 달씨의 가방은 대한민국 사회를 통과해 가는 보통 사내들의 행로를 잘 보여준다. 그 고단한 이야기는 저세상으로 진입하면 끝날 거라고 상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언젠가는, ‘억겁의 세월’ 후에라도, 다시 반복되리라는 암시가 선명하다. 엉뚱하고, 달달하고, 무서운 책을 읽고 나면 ‘한세상 살아간다는 게 결국 이런 것인가?’ 하는 질문이 진한 여운처럼 남는다.
류정환(시인, 도서출판 고두미 대표)

서평 2
안녕달씨의 그림책은 당당히 껍데기에서 나와 속살을 드러내는 민달팽이의 입장에서 등가죽이 따갑도록 시린 현실을 그림과 글로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지나간 삶의 노력에 대한 보상심리와 현실의 목마름을 자신의 아바타 달씨의 독백을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그림이 메꾸는 여백으로 군더더기 없는 글이 위로를 받고, 짧은 글의 직설적 의미를 그림으로 완곡하게 표현한 달씨의 이야기는 어쩌면 어른들의 처량한 동화처럼 보인다. 또 언어의 양면성이라는 유희를 빌어 고된 삶의 이면에는 아마도 행복이 존재 할 수 있다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독자의 가슴에 설정하기를 바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작가 달씨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말하지 못한 자신의 일상고독을 처음으로 용기 내어 말하면서 스스로에게 칭찬과 위로를 하고 있다.
이종현(커뮤니티스페이스 653예술상회 대표)

리뷰
민달팽이를 꿈꾸는 달씨

처음으로 손목에 찬 시계가 어색하여 느려졌다고 느낀 것은 시계가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생각의 흐름이 늦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심장 안에 있던 피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허파 안의 압력은 손목의 시계태엽이 팽팽히 긴장을 하여 오히려 지나치게 충분해서 무리가 간다면 세상 어느 곳엔들 의무로 가야 하는 곳에서는 이내 터질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한다. 김민광의 안녕달씨 “입학졸업”, “입대제대” 이야기이다. 아주 짧은 에세이라고 하는데 필자는 두 개의 작품에서 느끼지는 것은 미술에서의 미니멀아트의 시처럼 보인다.

그의 카툰을 보면 학교나 군대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규정과 규칙은 규율이 되어 질서를 경험하게 된다. 필자는 작가가 이미 미셀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통해 인지하고는 마치 아닌 듯이 34와 38사이에 슬그머니 36쪽을 삽입 편집한 것으로 보인다. 감시와 처벌은 교도소의 관리를 위한 판옵티콘의 양식에서 출발을 한다. 건축적 배치로 쉽게 통제를 할 수 있는 구조이지만 범죄자는 물론 이를 감시하는 중앙에 감금된 관리책임자 역시 이 장치와 연결된 부분적 존재로 본다. 이들은 나머지 분리된 존재들(죄수)의 반발이 발생할 경우 첫 번째 희생자가 될 것이다. 푸코는 ‘나의 운명은 내가 고안할 수 있었던 모든 속박에 의해서 결국 그들의 운명과 함께 묶여 있다’라고 하면서 교도소, 군대, 학교 병원도 이안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고 했다.
작가는 두 가지 상황에서 모두를 경험한 한국사회 남자로서의 부당한 경험들을 몇 자 되지 않는 에세이로 풀어내고 있다. 굳이 구차한 설명으로 라떼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카툰에서의 두 달씨가 너무 작고 왜소하게 보인다.

김민광의 에세이 “오늘 내일”을 읽으면 허구의 대화들이 반복되어 오고 간다. 에세이에서는 오늘과 내일 둘의 대화 이지만 공간과 시간을 동시에 결합하여 보면 등장을 하는 내일 들이 참 많다. 어제는 이미 가버린 시공간이기에 추억의 한 저장소이지만 오늘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일은 참 복잡한 시선으로 마주하게 된다. 어제와 오늘은 과거와 현재이고 죽은 자와 산자,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로도 보인다. 결코 대면이 불가능한 두 관계를 엮어서 어쩌겠다는 것인지 필자 나름대로 리뷰 해 보면 어제는 오늘을 대면할 수 없고 오늘 현재에서는 내일을 결코 만날 수 없다.

김민광이 이야기 하는 등식은 이렇다. 우리들 같은 오늘을 사는 산자들은 어제 죽은 자를 오늘 살고 있는 자의 삶속에 들여놓아 그들로부터 보호를 받고 내일을 안주를 하려고 한다. 결국 편안한 안주의 내일은 없었다고 했다. 없었다는 것은 있었대도 가능 했다는 미래분석의 것으로 해석이 된다. 카툰을 잠시 보면 달씨 하나가 휭하니 나가 버렸다. 아마도 어제의 달씨인 것으로 보이는데 테이블 위의 물건들의 배치로 보면 없는 하나의 달씨는 내일 인 것처럼도 보인다.

오늘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내일의 불안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을 에세이에서가 아닌 카툰에서 보여 준다. 내일은 來日인데, 올제나 하제(轄載)라고 하는 내일은 다가올 시간이라는 르완다어 Hazaza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말의 시제인 그끄저께, 그저께, 어제, 오늘, 모레, 글피, 그글피 안에 내일이 없으니 우리에겐 내일이 없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작가가 이야기하는 내일은 없다는 것으로 해석을 해도 무방한지 필자는 조심스럽다. 마치 내일부터 실업자가 되는 것 같은 느낌도 지울 수가 없으니 말이다. 아제 말고 그냥 안식일이나 왔으면 좋겠다.
김민광의 안녕달씨는 이면을 이야기하는 에세이다. 이면은 보이는 면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보이지 않는 면(속) 또는 사물의 보이지 않는 뒷면이다. 울어도 마찬가지고 웃음은 더욱 겉뿐인 것을 우리들은 스스로 잘 안다. 내가 지금 웃는 것은 웃는 게 아니야 라고 하는 것처럼 나의 겉은 타인으로부터 웃음을 전달받기를 바라는 태도로 진정한 행복의 웃음이 아닌 겉의 각색된 나의 웃음이다. 이것이 살면서 알아가는 나의 겉이다.

이글에서는 속에서부터 농축되어 익어 나오는 삶의 미소와 행복한 웃음을 무거운 짐으로 메고 다니던 나의 부정을 겉으로 다 드러내는 알몸의 순간이라고 보여 진다. 달씨가 던져버린 허물과 가면의 세계는 달씨의 내면 즉 그동안 부끄러운 속을 보이려 하지 않았던 것들의 부스러기를 한꺼번에 다 쏟아 내는 듯하다. 한동안 그는 다시 숨을 달팽이 빈껍데기를 찾을 것이다. 맞지 않는 빈껍데기들을 맴돌다 스스로(에고)를 발견하고는 이내 빈 몸의 에고의 본향을 거울(파도)에서 찾게 될 것이다.

미술의 표현 방법 중에는 중첩(Overlapping)의 효과라는 것이 있다. 이는 서로 다른 형태의 결합에 의한 화면의 다층적 구조를 형성하는 시각 개념으로 일차 시각화된 인식의 변화를 꾀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회화의 방식에서는 이미지가 중첩을 위한 공간과 빛의 중요도가 작용을 하여 치밀한 계획과 전시공간의 확보가 필요하다. 예술심리학자 루돌프 아른하임은 대상의 중첩 효과에 관하여 이렇게 표현을 하였다. 중첩은 대상의 부분을 제거하는 속성을 가지면서 동시에 대상들을 통합하기 때문에, 사물의 물리적인 완전성이 중요시 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중첩은 새로운 하나의 공간적 차원이 되는 것으로 공간에서 얻은 이미지를 중첩으로 표현하여 공간을 타 시점으로 시각화 하여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미술의 회화에 있어서의 공간의 개념과 공간 구성에서의 조형성에 대한 방법적인 면에서는 중첩에 의한 작위 된 의도적의 효과와 공간의 분할과 재구성이 포스트모던의 구조적 표현 방식의 하나이다.

중첩의 효과는 어떠한 흐름으로 축적되어 상승되고 차원이 빛과 같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해야 사물과 공간이 달라진다. 이렇게 개별화된 작품들이 서로를 호흡하면서 다층적으로 공간과 공간 안에서 계획된 의도를 견인해 내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공동의 세계를 경험 하게 되는 것이 중첩의 이미지이다.
한반도 남북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요원한 것인가? 대한민국의 정상들이 제시한 방법 중의 하나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예로 들어 설명을 하곤 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자체를 의미하거나 그 문제를 혁신적으로 해결하거나 승부수를 둘 때 주로 쓰는 정치적 용어로 어원을 보면 이렇다. 고대 그리스 땅 프리지아에 왕이 없어 왕이 될 사람은 전차를 타고 광장에 나타난다고 하는 전설이 있었다. 고르디우스가 이륜마차를 타고 오자 왕으로 추대하고 그의 이름을 따라 수도를 고르디온으로 세웠다. 왕이 된 고르디우스는 제우스 신전에 자기가 타고 온 마차를 바치고 복잡한 장식매듭으로 신전 기둥에 묶어 두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아시아 원정길에 올라 이곳을 지나다가 칼을 뽑아 신전으로 가서 단번에 칼로 매듭을 베어 버렸고 그 또한 왕이 되었다.

새로운 정부 때마다 진보건 보수건 통일과 한반도 남북의 문제는 하나의 수단으로 작용을 하기 도 한다. 그리고 국민이 보는 시각 또한 너무도 달라 선악의 대립 투쟁사로 얼룩진 이념의 갈등은 현재 남북의 문제를 푸는 방법으로 칼이 아닌 듯하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김민광 작가의 짧은 통일론을 쓴 남북은 서로 다른 생각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는 갈등의 구조로 보인다. 서로의 땅 남과 북을 등지고 바라보는 두 정상의 모습에서는 좌우간 만나자가 이루어지지 않아 보였다. 이 카툰 에세이집 최고의 완성체는 필자로서 ‘남 북’으로 보인다. 일반적 책이 가지고 있는 2차원의 읽기와 보기에서 두 장을 중첩하여 빛을 투과하면 두 정상은 한곳을 바라보며 같은 생각과 같은 미래를 보고 있다. 달씨가 가려 했던 곳이 이곳이었음을 두 장면의 오버랩에서 읽어 지는 것은 한참이 자난 뒤에서나 알게 되었다. 작가는 이 부분을 쉽게 열지 않았고 통일의 미래가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이 고르디우스의 매듭 풀기가 아닌 독자 스스로 한 방향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 이 작품 남북의 에세이 안에 있는 카툰의 의미로 기억하고 기록하고 싶다.

달씨는 달팽이다. 자신의 집을 가지고 있는 가장의 달팽이이다. 달씨는 민달팽이를 꿈꾸는 달팽이이다. 쉼으로서의 소유가 아닌 짐으로서의 소유를 버릴 수 있다면 자신의 내면에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독특함을 발상하는 것과 밖으로 표출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생산적인 인간이라 한다면 그 생산적인 인간은 자신의 내면에서 진정한 자아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외부에서 타자에 의해 심어진 최면에서 깨어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인간이 자기를 위한 내면의 인간이다. 그 반대로 집단에 속에서 타자에 의해 자아를 보는 어리석음은 어느 하나의 관념과 신념에 동일시된 권위적인 인간으로 자아의 발견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자신의 생각을 자아의 발견에 충실하게 소모하고 외부의 권위에 수용당하지 않는 것이 억겁을 다시 시작한다 해도 결코 먼 길이 아닐 것이다. 생산적인 인간이 이성과 양심이 작동하면서 그 작동이 성격에 영향을 끼치면 긍정적인 선순환 구조를 가진다. 자신의 내면의 이성과 자신안의 양심이 살아나야 자유의지를 가지고 정의나 도덕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가장 마지막 에세이 겉 속은 작가가 진정으로 자신을 발견하고 비우고 싶었던 일들을 기록하듯 그려 나아간 듯하다. 저 멀고 높은 파도와도 같은 또 다른 반백년의 삶을 겸허하게 지켜보고 기다려 보는 것도 김민광 작가를 위로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가 그를 위로하며 이야기 하듯 수고로운 삶에 무심했던 달씨에게 따뜻한 위로를 보낸다고 했으니 나 또한 짐이나 되지 않아야겠다.
김기현(화가, 교육자, 미술칼럼리스트)

김민광 달씨 이야기
2020/12/11- 2020/12/24

전시 장소 Venue: 오뉴월 이주헌 O’NewWall Ejuheon
운영 시간Opening Hour: 11시 – 18시 (Sun, Mon Closed)

Artists: 김민광

Critical Point

최재영

Critical Point
2020/10/23- 2020/11/14

크리티컬 포인트Critical Point

최재영 작가는 150호 대작 <크리티컬 포인트 6>을 비롯한 신작 작업에 올해를 꼬박 바쳤다. 쌓이고 쌓이며 붓과 나이프로 휘두르듯 덧댄 물감의 레이어, 그리고 폭발하듯 시선을 사로잡는 색감에서 작가의 고된 전념을 읽을 수 있다.

작업에서 맨 먼저 눈길을 끄는 점은 바로 방호복 입은 인물이다. 인공적인 분홍빛이 배어나오는 정면 아래 흰색 부면으로 대체된 듯 보이는 <크리티컬 포인트 9>를 제외하면, 이 인물의 구체적인 상은 다수의 그림에서 고르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작가 자신의 투영으로 읽어야 할까? 다만, 작가는 그 상징을 풀어보고 해석할 권한을 우리에게 위임할 뿐이다.

몽환적인 풀숲을 바라보거나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사람. 그가 위생복을 입은 이미지를 그린다. 위생복은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입지만, 상대방을 보호하고 외부 환경을 보존하기도 한다. 긴장감을 유지한 상태의 만남, 서로를 알아가는 늘 조심스러운 순간이다. 미지로 들어가 접촉을 시도하고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탐구하는 과정이다.(작가 노트)

방호복은 자연과 맞닿은 인공의 경계를 의미하는 걸까? 예전 작업보다 훨씬 밝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최재영의 그림은 대부분 밤을 배경으로 스폿 조명이 시야를 확보하는 형식을 띤다. 현란하고 환각적이기까지 한 형광빛 색감은 오싹한 미적 경험을 불러온다. 누군가는 방호복의 창백한 빛에서 파괴적이면서도 취약한 문명의 상징을 읽을 수도 있으리라. 몽환적인 꽃과 풀숲으로 덮인 골짜기에는 파묻은 가축 사체가 악취를 풍기고 있을지 모른다. 방호복을 입은 군상이(<크리티컬 포인트 6>) 검정색 비닐 포대를 묶는 듯한 고야풍 장면을 보라.

크리티컬 포인트(임계점)는 고체가 액체로 변하는 지점을 이르는 말이다. 혹은 풍선에 바늘을 대었을 때 터지는 순간을 미분하면 0에 가까워지는 시점을 뜻하기도 한다. 그 순간은 0으로 수렴하되 0이라고 말할 수 없다. 경계가 명확히 생기진 않지만 분명 존재하거나 또는 존재를 요청받는 것, 바로 크리티컬 포인트다. 이는 작가가 갖고 있는 끈질긴 강박과 선입견을 인정하면서 그 너머를 보려는 노력을 빗댄 것이다. ‘늘 경계가 모호해지며 인식이 바뀌려는 찰나를 작업에 표현’ 하는 일이다.

강상훈, 스페이스 오뉴월 공동대표

최재영, 작가노트

‘Critical point(임계점)’는 고체가 액체로 변하는 지점, 혹은 풍선에 바늘을 가져다 대었을 때 터지는 순간 등을 미분하여 ‘0’에 가까워지는 지점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수치는 ‘0’에 수렴할 수는 있어도, 엄밀한 의미에서 ‘0’이 될 수는 없다. 경계가 명확하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어떤 지점이 Critical Point인 것이다. 이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강박 또는 선입견과도 관련이 있다. 경계가 모호해지고, 인식이 전환되는 찰나를 표현하고자 했다.

몽환적인 풀숲을 바라보거나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는 사람. 이 사람이 위생복을 입고 있는 이미지를 그린다. 위생복은 외부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입는 것이기도 하지만, 외부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서도 입는다. 긴장을 유지한 상태의 만남, 조심스럽게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미지로 들어가 접촉을 시도하고,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탐구하고자 한다.


전시 장소 Venue: 오뉴월 이주헌 O’NewWall Ejuheon
운영 시간Opening Hour: 11시 – 18시 (Sun, Mon Closed)

Artists: 최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