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Galley O'NewWall, last exhibitions

이재욱 리듬, 색, 새소리 연구 Jaewook Lee Solo Exhibition, Treatise on Rhythm, Color and Birdsong

전시작가이재욱/Jaewook Lee
장르평면, 영상, 퍼포먼스, 설치/ Drawing, Video, Performance, Installation
전시기간2016.8.5 - 2016.9.3
오프닝2016.8.5 금요일 05:00pm
아티스트 토크/퍼포먼스2016.8.5 금요일 05:00pm - 07:00pm
주최스페이스 오뉴월
후원서울특별시, 서울시립미술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입장료/관람료없음
관람가능시간 및 휴관일11:00 - 18:00 / 일요일, 공휴일 휴관

전시 소개

학제간 융합예술가로서 재조명하는 음악가 메시앙과 초현실주의 미술가 레메디오스 바로

이재욱 개인전 <리듬, 색, 새소리 연구>가 스페이스 오뉴월에서 2016년 8월 5일부터 8월 25일까지 열린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 중 한 명인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 1908~1992)과 스페인 출생의 초현실주의 화가 레메디오스 바로(Remedios Varo, 1908~1963)를 대안적 역사의 관점에서 주목한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두 천재 예술가의 흥미로운 교차점에 착안해 재해석한 영상 1점, 설치 2점, 드로잉 5점 등 총 8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왜 이 두 예술가에 천착했을까? 1908년 12월, 같은 시기에 태어났다는 운명론적 사실 외에도 둘 다 초현실주의에 영향 받았으며 예술적 영감을 물리학 등 비예술 분야를 통해 얻고자 했다는 공통점을 들 수 있다. 그들의 시도는 오늘날 현대미술에서 낯설지 않은 학제간 융합과도 맞닿아 있다. 동시대 예술은 현대의 복잡한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여러 분야의 협업을 시도하고 있는데 예술을 통한 이런 학제간의 교류는 예술가의 영역을 더욱 확장시키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이재욱의 활동은 이런 현대미술의 경향성을 잘 나타낸다. 그는 예술가의 고유영역인 작품 생산 외에 다양한 학술 및 출판 활동을 통해 예술이 단순히 사회적 현상을 비추는 것뿐 아니라 실제 지식을 생산하는 주도적 역할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의 이런 태도는 메시앙에게 영감을 줬던 미국 유타 주의 협곡과 바로의 회화적 소재를 교차시켜 만든 영상 작품 <리듬, 색, 새소리 연구>(2016)에서 두드러진다. 작가는 새로운 예술 작품의 창조적 주체로 자신을 위치시키기보다 두 예술가를 과거로부터 되살려 협업을 주선하는 매개자(혹은 기획자)로 역할한다. 이는 주류 역사관에서 배제된 과거의 인물과 연구에 주목하고 이를 재배치하는 학술 연구자로서의 성격을 띤다. 이런 시도는 국내에 생소했던 ‘오브제 지향 존재론(Object Oriented Ontology)*’에 대한 개념을 소개했던 <오브제 이론>(2015)과 그 흐름을 같이 하고 있다. 이 전시가 작가의 작품 세계와 연관된 철학적 이론을 소개하는 성격이 짙었다면 이번 전시는 메시앙이 지녔다는 공감각적 재능 즉, 색을 통해 특정한 소리를 연상하는 능력으로 작곡한 음악에서 영감을 얻은 드로잉 작품과 <리듬, 색, 새소리 연구> 영상 작품 속 이미지를 재연하는 플루트 연주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작품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미술비평가이자 기획자인 데니즈 카르발류(Denise Carvalho)가 패널로 참여하는 아티스트 토크와 퍼포먼스가 스페이스 오뉴월에서 열리며 이재욱 작가와 최근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젊은 철학자 에런 슈스터(Aaron Schuster)와의 대담 ‘들뢰즈(Deleuze)가 본 메시앙’이 오뉴월 이주헌(스페이스 오뉴월 프로젝트 공간)에서 열린다.

_송고은(스페이스 오뉴월 큐레이터)

Revisiting Musician Olivier Messiaen and Surrealist Artist Remedios Varo Through the Lens of the Interdisciplinary

Jaewook Lee’s solo exhibition, Treatise on Rhythm, Color, and Birdsong, takes place at Space O’NewWall from August 8, 2016 to August 25, 2016. As an alternative history, this show revisits Olivier Messiaen, one of the most influential composers of the 20th century, and Spanish-born Mexican surrealist painter Remedios Varo. Lee presents a video, two installations, and five drawings that focus on the interesting intersection between the two genius artists.

Why does Lee focus on the two artists? Besides the coincidental fact that they were both born in December 1908, they both sought artistic inspirations from other fields of knowledge such as science. Their approach fits today’s commonly accepted notion of the interdisciplinary nature of contemporary art. Contemporary art attempts to collaborate with other fields to express today’s complex world. This interdisciplinary approach expands the sphere of art more broadly. In this sense, Jaewook Lee’s recent works well represent this current of contemporary art. Lee not just produces art objects, but also writes and does scholarly research, showing how art has a leading role in knowledge production beyond mere representations of social phenomena.

Lee’s attitude is clearly seen in his video, Treatise on Rhythm, Color, and Birdsong (2016), which sheds light on the intersection between Utah’s canyons which inspired Messiaen’s music and the elements of Varo’s paintings. Lee does not position himself as a producer of art objects, but a mediator or curator who facilitates interactions among different fields by reviving the two artists from the past. Lee works as a researcher who focuses on artists of the past who have been marginalized from the canonical art history and gives them new meanings. This approach was also shown in his previous exhibition, Object Theory (2015), which introduced “Object-Oriented Ontology” to the Korean art world. While the previous show focused more on introducing the philosophical background, this show presents various works such as drawings inspired by Messiaen’s synesthesia–the ability to hear sound from colors and a live flute performance from Lee’s video work, Treatise on Rhythm, Color, and Birdsong (2016). Especially, internationally recognized philosopher Aaron Schuster will speak about “Deleuze’s interpretation on Messiaen” at O’NewWall E’juheon (Space O’NewWall Project Space)  as part of the exhibition.

_Goeun Song(Curator of SPACE O’NEWWALL)


 

*오브제 지향 존재론(Object Oriented Ontology)

<Art Review Power 100>에 철학적 운동으로서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오브제 중심 존재론(Object Oriented Ontology)” 또는 “이론적 현실주의(Speculative Realism)”는 인간 중심적 철학의 역사에서 벗어나 인간과 인간 이외의 오브제들을 동등하게 바라보는 새로운 시점을 제시하는 철학 운동이다. 주요 철학자로 그레이엄 하먼(Graham Harman), 캉탱 메이야수(Quentin Meillassoux), 트리스탄 가르시아(Tristan Garcia), 티머시 모턴(Timothy Morton), 브루노 라투르(Bruno Latour) 등이 있다.

– 이재욱 개인전 <오브제 이론>
(http://onewwall.com/jaewook-lee-solo-exhibition-object-ontology)

*올리비에 메시앙 Olivier Messiaen
https://youtu.be/xCZSBU_uB6g

*레메디오스 바로 Remedios Varo
https://en.wikipedia.org/wiki/Remedios_Varo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시행중인 <SeMA Emerging Artists & Curators Supporting Program: SeMA 신진미술인 전시지원 프로그램>의 선정 전시입니다.

전시 서문

오늘의 음다飮茶

 

나는 ‘제비’라는 이름의 카페SWALLO CAFE에 앉아 있다. 이런 말장난은 제쳐두고 이 이름은 일종의 마들렌 과자 같은 보조기억장치aide mémoire다. 고요히 앉아 제비를 생각한다. 어릴 적 나를 매혹했던 첫 번째 새.

(6살 아이가 듣기에 너무나 다성적이고 무질서했기 때문에) 제비의 노래 때문도, 그 턱시도 모양의 꼬리 때문도 아니었다. 둥지였다. 실로 그것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건물 창틀 사이나 초등학교 지붕의 처마 밑에 끼어 있던 진흙 조각으로 기억한다. 그 둥지는 햇빛에 거의 노출되어 있지 않았고 중력에 도전하는 동굴처럼 보였다. 둥지의 격리된 본성과 상대적으로 단단한 만듦새는 나에게 모순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이 철새는 오직 한시적으로만 여기에 머물며, 더 따뜻한 잠자리를 위해 내 상상을 넘어서는 먼 거리를 날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어렸던 내가 보기에, 집이 만들어지는 방식은 주인이 그 장소에 어떻게 연관되는지 말해주는 것이었다. 튼튼하고 오랫동안 버틸 만한 둥지는 계속 머물 곳이다. 마찬가지로 만약 집이 임시방편으로 만들어졌다면 집 주인은 자주 움직이며 여행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제비가 왜 캠핑할 때처럼 거처를 만들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이제는 안다. 단단할수록 비우고 살지 않는 시기 동안 더 잘 버틸 수 있으며 파손률이 낮다.

내 부모는 이런 몽상을 현실적으로 교정하기 위해 너무 일찍 학교로 보냈다. 내 상상 속에서 제비가 학교 처마의 진흙 둥지 같은 목가풍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이유다.

카운터 위 찻잔 조금 멀리 책이 놓여 있다. 제목은 ‘Presente del Pasado.’ 이 스페인어를 반사적으로 ‘과거의 선물’로 오역한다. 힐끔 그것을 본다. ‘유물이나 기억에 관한 책이겠지’라고 호기롭게 넘겨짚는다. (털어놓자면, 나는 책 표지에 적힌 말로 내용을 속단하는 한심한 전문가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하면서 이 제목의 실제 의미, ‘과거의 현재’를 깨달았다. 그러니까 ‘그때’의 ‘지금’ 말이다. 기술적으로 말하자면 현재는 물론 언제나 과거다. 헤라클레이토스의 강으로 알려진 난제다. ‘지금’을 가만히 숙고한다면, 그것은 이미 사라져 ‘그때’가 된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발목 주변의 물이 바다를 향해 끊임없이 흐르듯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Pasado del Presente’ 같은 표제는 몹시 상식적인 말일 수 있다. 그럼에도 ‘과거의 현재,’ ‘Pasado del Presente’ 같은 역전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 그건 레디메이드의 해답이 없는 곤혹스런 선물이었다.

과거의 현재를 상상할 때, 우리는 예지prescience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특출난 예언자가 자신이 살았던 시간을 앞서 갔다는 그 신화를 되살리고 있는 걸까? 우리는 한참 전에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몹시도 동시대적으로 보이는 과거의 현상을 현재의 시점으로 평가하고 있는 걸까? 마치 어떤 것 안에 있는 일종의 악마적인 ‘퓨처 나우future now’의 실체가 끈덕지게 압박하고 있는 것처럼? 1년은 지나서야 나를 지배하게 될 DNA 구조 속 강력하게 예정된 결함을 상상한다. 바뀌지 않고서도. 그러한 실체/결함/작은 악마는 문맥특정적 아이디어에 저항한다, 정말로. 그건 자신의 환경에도 불구하고 존재한다. 제비와는 다르게.

펭귄처럼, 제비는 나는 일이나 둥지와 아무 상관없이 인간의 특정한 정장 유형과 관련된다. 제비의 모양과 색, 디자인은 턱시도와 닮았다. 우리 현대인은 심지어 턱시도를 입은 남자가 조금도 새처럼 느끼지 않는 반면 새가 정장을 입었다는 생각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우리가 인간이 아닌 존재에서 얼마나 쉽게 인간 현실을 보는지 드러낸다. 대부분의 사람이 새처럼 느끼기 위해서는, (문자 그대로) 날거나 거대한 새처럼 헤드기어를 쓰는 등 차려 입어야 한다. 명백하게, 우리 중 대다수는 멍청한 장비의 도움 없이는 다른 존재처럼 느낄 수 있는 상상력이 없다. 유사하게 우리는 새가 우리를 위해 노래하는 것처럼 새소리를 듣는 경향이 있다. 새가 앰뷸런스 사이렌이나 여름의 야외 디스코테크, 거리 시위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사려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최소한 인간이 자발적이거나 비자발적으로 만들어내는 소음을 듣는 다른 존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고 실험은 가치가 있다.

현재는 과거가 되며 그것은 거의 ‘변형’이라고 분류하기 힘들다. 방치했던 둥지로 귀환하는 제비에게 오직 단 하나 변화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계절이다. 자연이 인간 대다수에게 명백해지기 위해서는, 혹은 우리가 아닌 무엇이 우리 대다수에게 감지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일련의 사변speculation을 통과해야만 한다. 우리는 자신의 멸종 이후 세계를 상상하며, 우리는 언어를 사용하는 동안 언어 없는 사유를 불러내고자 한다. …… 이 실험의 가짓수는 대단히 많고 복잡하며, 때때론 심지어 수학적 난제의 모습을 취하기도 한다.

나는 새를 관찰하지만 아무것도 모른다. 견자見者Auspician는 새가 나는 것에서 의미를 발견할 줄 아는 자다. 그는 미래를 본다. 적합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언어를 뛰어넘는 기술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 대다수가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견자는 범인이 지나치고 마는 새들의 대형과 날갯짓에서 징후를 끄집어낼 수 있다.

사고방식을 재설정하기 위해 나는 종종 창밖의 전신줄 위에 앉은 새를 관찰하곤 한다. 그 새는 우리의 대화를 엿듣는다. 그 새는 날아오르며 우리의 말까지 가져가버린다. 중세 회화에서 묘사했던 바로 그 새는 오래전 브뢰겔Brueghel*이 포착한 바 있다. 길가의 전신줄을 따라 줄지어 앉아 있는 새는 교수대에 올라 사형수의 마지막 고해를 들었던 까치이거나, 마을 서커스에서 기상천외한 무엇을 말하도록 훈련된 곡예하는 새의 후예다. 그들 각각은 다른 종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새이며, 교회 지붕 위에 그려진 비둘기처럼 성스러운 그 정신은 ‘가장 순수하게’ 상대적이다. 모든 것 안의 모든 것, 그것들은 전선 없이도 커뮤니케이션의 의미를 육화한다.

나는 다 알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 컴퓨터의 메일 어플리케이션 아이콘은 독수리이며, 메시지를 보낼 때면 마치 비행기 이륙하는 소리를 낸다. 오직 지금 우리는 그 새를 따라잡고 있다.

결국 그건 공룡과 가장 근접한 종種일 것이다.

 

_세라 데뮈제 Sarah Demeuse

Tea Today.

… I am sitting at a café cheekily called SWALLOW CAFE. Pun aside, this name is also an aide mémoire: it is my madeleine of sorts. I think quite fondly of swallows; they are the first birds that fascinated me as a child.

Not because of their song (too multitudinous or chaotic to my 6-year-old hearing) and not because of their tuxedo tail. It was their nests, really, that called my eye. I remember them as mud sculptures tucked against the frame of buildings. And under the beams of my first school roof. Those nests had almost no opening to the sunlight. They looked like inverse gravity-defying caves. Their closed-off nature and relatively strong build, to me, contradicted the fact that these birds migrate, that they only lived here part-time, that they go extremely far distances to hibernate in more humane climates. Much farther than I had ever been. The house one built, in my young eyes, spoke to how one related to place. If a house was strong and persisted over time, it meant one would stay. Similarly, if a house was makeshift, it meant travel, frequent movement. It was therefore hard to understand why they didn’t construct a more camping-like structure. Of course, I now comprehend that a stronger house may better persist during periods of abandonment and non-inhabitation, that it has better survival rates than a quickly built structure.

My parents changed me to another school too early for my puzzled enchantment to make way for factual observation. And that’s how the swallow remained idylically incrusted in my imagination, very much like its clay nest in that schoolyard.

A bit further from my teacup on the counter sits a book. Its title is Presente del Pasado, which I automatically mistranslate from the Spanish as “gift of the past.” I glance at it. “Must be another book about heirlooms or memories,” I venture. (Between you and me, I am a pathetic expert in shortcut-judging a book by the words on its cover.) But upon further consideration, I realize this title actually means “present of the past”–as in the now of the then. Technically speaking, the present is of course always past. It’s that conundrum of Heraclitus’s river: once you stand still and ponder your now, it’s already gone, and become a then, just like the water around Heraclitus’s ankles keeps flowing to the sea. In this sense, a title like Pasado del Presente would be a much more commonsensical statement. Yet, what to do with the inverse–“the present of the past,” presente del pasado? It was a puzzling gift for which I had no readymade answers.

When conjuring the present of the past, are we talking prescience? Are we resuscitating the myth of exceptional visionary beings who were ahead of the time in which they lived? Are we evaluating past manifestations that, from our current viewpoint, appear extremely contemporary even though they happened decades ago–as if there was some sort of diabolical future now entity inside something else, pushing persistently? I envision a strong-willed glitch in the DNA structure whose manifestation will only become mainstream years after. Without any need for updating. Such entity/glitch/little devil defies the idea of context-specificity, really. It exists despite its environment.Unlike the swallow.

Like the penguins, swallows are associated with a specific type of human formal wear that has nothing to do with flying or nests. Their shape, color, and design roughly resembles the tuxedo. We, modern humans, are willing to accept the idea of birds in suits even when men in tuxedoes most likely don’t feel bird-like in the least. It’s indicative of how easily we see a human reality in beings that are other than human, and of how little we can see the transformation going the other way. For most humans to feel like a bird, they either need to be flying (literally so) or be dressed, headgear included, like a giant bird. Clearly, most of us lack the imagination to feel like another being without a host of ridiculous accoutrements. Similarly, we tend to hear birdsong as if it is performed for us without considering how they may perceive our ambulance sirens, outdoor summer discothèque, or street protests. There is no way of knowing, but it’s a valuable exercise to at least entertain the thought that there may be other receivers of our voluntary and involuntary noise-making, too.

The present becoming the past can hardly classify as a “transformation.” For the swallow to return to the abandoned nest, the only thing that has to change is the season. For nature to become apparent to most humans–or for what is other than us to become tangible to most of us–we have to jump through a series of speculative, philosophical hoops. We imagine the world after our species’s extinction, we conjure thought without language while using language, …. The exercises are plenty and complex, and sometimes even take the shape of mathematical riddles.

I observe the birds and am clueless. Auspicians are those who know how to detect signs in birdflight. They see the future. Not because they have a genetic attunedness to it, but because they master a technique over a language most of us can’t grasp: they can extract premonitory phenomena from what commoners see as random birds in random formation in the sky.

In order to reset my mind, I often tend to observe the birds sitting on the cables outside. In my imagination they are telephone cables. The birds are eavesdroppers into our conversations; when they fly off they take our words with them.  Just like those birds depicted in medieval paintings–Breughel the older knew this already. The birds along my streetcables are descendants of those magpies on the gallow, who capture the last confession of the hanged man, or of those who are trained to say certain outrageous things in village circus stunts. Each of them is a different kind of messenger bird, and the dove-like holy spirit painted on a church’s cupula is its ‘purest’ relative. All in all, they embody wireless means of communication.

I realize I’m stating the obvious: the icon for the mail app on my computer has an eagle, and when my message departs it does sound like it just went airborne. Only now are we catching up with the birds.

After all, they are the closest we’ll ever get to dinosaurs.

 

_Sarah Demeuse

전시 전경

작품 이미지

JaeWook Lee, Sound-color

이재욱, Sound-color, 788 x 545mm, 종이에 수채물감, 2016
JaeWook Lee, Sound-color, 788 x 545mm, watercolor on paper, 2016

JaeWook Lee, Neural-pathway

이재욱, 신경 경로(Neural-pathway),  545 x 394mm, 종이에 수채물감, 2016
JaeWook Lee, Neural-pathway, 545 x 394mm, watercolor on paper, 2016

JaeWook Lee, Birdsongs-Blackbird

이재욱, Birdsong-Blackbird,  394 x 545mm, 종이에 수채물감, 2016
JaeWook Lee, Birdsong-Blackbird, 394 x 545mm, watercolor on paper, 2016

이재욱, 리듬, 색, 새소리 연구, 단채널 비디오, 6분 31초, 2016_스틸 컷
JaeWook Lee, Treatise on Rhythm, Color, and Birdsong, single channel video, 06’31″duration, 2016_Still Cut

이재욱, 리듬, 색, 새소리 연구, 단채널 비디오, 6분 31초, 2016_스틸 컷
JaeWook Lee, Treatise on Rhythm, Color, and Birdsong, single channel video, 06’31″duration, 2016_Still Cut

이재욱, 리듬, 색, 새소리 연구, 단채널 비디오, 6분 31초, 2016_스틸 컷
JaeWook Lee, Treatise on Rhythm, Color, and Birdsong, single channel video, 06’31″duration, 2016_Still Cut

이재욱, 리듬, 색, 새소리 연구, 단채널 비디오, 6분 31초, 2016_스틸 컷
JaeWook Lee, Treatise on Rhythm, Color, and Birdsong, single channel video, 06’31″duration, 2016_Still Cut

패널 소개

데니즈 카르발류(Denise Carvalho)는 브라질 태생의 기획자이자 미술비평가이며 학자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에서 미술사 석사와 문화연구에서 박사학위를, 뉴욕 헌터 컬리지에서 인류학 석사를 받았고 시각예술대학교에서 미술학사를 받았다.

주요 기획 전시로는 <AMOR>(2016, Oi Futuro Telecommunications Museum, 리우 데 자네이루, 브라질), <Love on the Edge>(2015, Arsenal Gallery Power Station, 비아위스토크, 폴란드), <Beyond Limits>(2014, the Art institute in San Diego, U.S)를 기획했고 <제3회 Mediation Biennale>(2012, 포즈난, 폴란드)의 큐레이터로 초청받았다. 그 외에도 <Innerspacing the City>(2011, Chelsea Art Museum, 뉴욕), <Minimal Differences>(2010, White Box Gallery, 뉴욕), <Intangible Interferences> (2010, Momenta Art, 브루클린, 뉴욕) 등 뉴욕의 대표적인 공간에서 열린 다수의 전시 등이 있다. 이외 <Hybrid Dwellings>(2001, Arsenal Gallery, 폴란드), <Fairy-Tale>(1999, the Center of Metamedia, 체코)와 같은 초대 국제전시와 심포지엄을 기획했다.

전시기획 외에도 데니즈는 비평가로서 Art in America, Sculpture, Art Nexus, NKA Journal of African Contemporary Art, Afterimage, Art and Society와 같은 권위있는 미술잡지와 저널 뿐만 아니라 다수 작가들의 도록에 수많은 글을 기고 했다.

http://www.denisecarvalho.com/
http://news.naver.com/main/read.nhn…

에런 슈스터(Aaron Schuster)는 암스테르담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철학자이자 작가다. 그는 크로아티아의 리예카와  베를린 ICI 문화 연구분야의 심화과정 펠로우를 역임하였으며 암스테르담의 샌드버그 인스티튜트, 철학과의 최고 책임자이다. 에런 슈스터는 미국의 암허스트 컬리지에서 법 철학분야로 학사학위를 받았으며 벨기에 루뱅 대학교에서 심리학 석사, 박사 과정을 마쳤다. 공중부양의 역사, 섹스와 안티섹스, 부패(변형), 간지럼, 정치의 게으름, 에른스트 루비치의 코메디 그리고  카프카의 철학자-개에 관해 대해 썼다. 그는 현재 시카고 대학의 초빙교수로 있다.  최근 저서로는 <The Trouble with Pleasure: Deleuze and Psychoanalysis>가 있다.

https://www.ici-berlin.org/profile/schuster/